에런
코플런드
미국 음악의 학장, 대초원의 소리를 만든 작곡가
Aaron Copland · 1900 — 1990
듣는 사람이 없다면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작곡가들의 학장’ — 미국의 소리를 발명한 사람
에런 코플런드. 그는 “Dean of American composers”라는 칭호로 불리며, 미국 클래식 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한 가장 중요한 작곡가입니다. 코플런드 이전의 미국 클래식 음악은 유럽의 모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가 열어 보인 것은 광활한 대초원과 낙관의 소리, 카우보이의 노래와 셰이커 찬송가가 어우러진 진정한 ‘미국의 소리’였습니다.
브루클린의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코플런드는 파리로 건너가 전설적인 교사 나디아 불랑제에게 사사했습니다. 불랑제는 코플런드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는 유럽의 기법을 완벽히 습득한 뒤 미국으로 돌아와 완전히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창조했습니다. 개방 5도 화음, 넓은 간격의 화성, 불규칙한 리듬 —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듣는 이에게 끝없이 펼쳐진 미국 서부의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브루클린에서 탱글우드까지 — 미국 음악의 건축가
코플런드는 냉전 시대 매카시즘의 회오리에 휘말렸습니다. 젊은 시절의 좌파적 정치 성향 때문에 하원 비미활동위원회에 소환되었고, 그의 ‘링컨의 초상’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식 프로그램에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장 낙관적이고 민주적인 정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코플런드는 또한 공개적이지는 않았지만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20세기 중반의 보수적 미국 사회에서 이 사실은 그의 사적 영역에 묻혀 있었으나, 그의 음악적 감수성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공감은 그의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탱글우드 음악 센터의 설립에 참여하고,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한 차세대 미국 음악가들을 멘토링하며, 미국 음악의 인프라 자체를 구축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대초원의 6개 풍경 — 미국의 소리로 쓴 걸작들
아팔래치아의 봄
펜실베이니아 농촌의 신혼부부 이야기를 그린 발레 음악. 셰이커 찬송가 'Simple Gifts'의 변주가 미국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코플런드 특유의 투명하고 넓은 화성이 정점에 달한 걸작입니다.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제2차 세계대전 중 신시내티 심포니의 의뢰로 작곡된 금관과 타악기를 위한 팡파르. 단 4분의 곡이지만, 민주주의와 평범한 시민의 존엄성을 선언하는 강력한 음악적 성명서입니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록 편곡으로도 유명합니다.
로데오
미국 서부 목장을 배경으로 한 발레 음악. '토요일 밤 왈츠'와 '호다운'은 카우보이 노래와 스퀘어 댄스의 리듬을 예술음악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예입니다. 비프 광고 음악으로도 널리 알려져 미국인의 일상에 깊이 스며든 곡입니다.
빌리 더 키드
미국 서부의 전설적 무법자 빌리 더 키드의 이야기를 그린 발레 음악. 카우보이 민요를 직접 인용하며, 총격전과 광야의 고독을 관현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코플런드의 '미국 3대 발레'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링컨의 초상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문을 내레이터가 낭독하고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 게티즈버그 연설의 감동을 음악으로 증폭시키며,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코플런드의 작품입니다.
클라리넷 협주곡
재즈 클라리네티스트 베니 굿맨의 의뢰로 작곡된 이 협주곡은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입니다. 느린 서정적 부분과 빠른 재즈풍 부분의 대비가 매력적이며, 코플런드의 재즈적 감각이 가장 세련되게 드러나는 곡입니다.
미국의 소리 —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코플런드의 가장 큰 업적은 ‘미국적 사운드’를 발명한 것입니다. 개방 5도 화음으로 만들어내는 광활한 공간감, 불규칙한 악센트와 변박으로 표현하는 카우보이의 리듬, 민요 선율의 정제된 인용 — 이러한 요소들이 합쳐져 듣는 순간 미국의 대초원과 산맥이 눈앞에 펼쳐지는 독특한 음향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코플런드 이전에는 미국 클래식 음악이 유럽을 모방했지만, 코플런드 이후 미국은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음악의 접근성을 중시했습니다. 초기에는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은 모더니즘 작품을 썼으나, 1930년대 대공황기에 ‘보통 사람’을 위한 음악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의 음악은 단순하면서도 깊고,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독특한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코플런드 이전과 이후 — 미국 클래식 음악의 분수령
미국의 소리를 창조하다
코플런드 이전에 미국의 클래식 음악은 유럽을 모방했습니다. 드보르자크가 ‘신세계 교향곡’으로 힌트를 주었지만, 정작 미국인 작곡가가 미국의 소리를 찾아낸 것은 코플런드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는 광활한 대초원과 낙관주의의 사운드를 발명했고, 이 소리는 미국의 음악적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영화 음악에서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까지, ‘미국적인 소리’라고 느껴지는 것의 대부분은 코플런드가 만든 음악적 언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 음악의 영원한 토대
코플런드의 유산은 미국 음악의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존 윌리엄스의 영화 음악부터 존 애덤스의 미니멀리즘까지, 미국 작곡가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코플런드가 열어 놓은 길 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는 매년 수많은 졸업식과 국가 행사에서 연주되며, ‘아팔래치아의 봄’은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입니다. 90세까지 살며 미국 음악의 거의 한 세기를 관통한 코플런드는, 작곡가이자 교육자이자 지휘자이자 저술가로서, 미국 클래식 음악의 모든 측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