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1월 23일 밤, 뉴욕 카네기홀 무대 위에서 존 해먼드는 청중에게 한 남자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려주었다. 이미 석 달 전에 사망한 남자였다. 스물일곱 살, 이름은 로버트 존슨. 29장의 녹음만을 남긴 채 사라진 그 목소리는, 그날 카네기홀에서 블루스의 역사를 새로 썼다. 흙먼지 이는 미시시피 델타에서 태어난 음악이 어떻게 전 세계를 정복했는가 — 그 이야기는 세 사람의 생애를 경유한다.
블루스는 고통이 발명한 언어다. 19세기 말 미국 남부의 목화밭과 철도 공사장에서 흑인 노동자들이 노래한 ‘필드 홀러(Field Holler)’와 ‘워크 송(Work Song)’에서 싹튼 이 음악은, 특정한 음계와 코드 진행을 갖는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졌다. 12마디, 반복되는 후렴, 그리고 무엇보다 — 꺾이고 울고 신음하는 음정, ‘블루 노트(Blue Note)’. 이 음악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온 세계로 퍼뜨린 세 사람이 있다. 로버트 존슨, 머디 워터스, 그리고 B.B. 킹.
블루스 100년의 결정적 순간들
로버트 존슨: 십자로에서 악마와 계약한 남자
Robert Johnson
Robert Johnson (1911–1938)
미시시피 클라크스데일 외곽, 61번 도로와 49번 도로가 만나는 십자로 (Crossroads). 전설에 따르면 로버트 존슨은 한밤중 이 교차로에서 악마를 만나 기타를 건넸고, 악마는 현을 조율해 돌려주었다. 그 대가는 영혼. 이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 존슨이 1936년 첫 녹음 세션에 나타났을 때, 그의 기타 실력은 주변 어떤 연주자도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사실 존슨이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주변의 평가는 냉혹했다. 블루스 선구자 선 하우스(Son House)는 그를 “형편없었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2년 뒤 존슨이 돌아왔을 때, 그는 달라져 있었다. 왼손은 박자를 잡으면서 동시에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고, 오른손은 멜로디와 화성을 동시에 뽑아냈다. 마치 기타 한 대로 세 사람이 연주하는 것 같았다. 그가 발명한 것은 기타 연주법 그 자체였다.
“나는 방랑하는 방랑자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멈출 수 없다.”
— 로버트 존슨, ‘Ramblin’ on My Mind’
존슨의 삶은 미스터리다. 1938년 8월 16일, 그는 미시시피 그린우드 근처에서 죽었다. 공식 사인은 “알 수 없음”. 독살 의혹, 질투한 남편의 독이 든 위스키, 심지어 매독까지 — 여러 이론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는다. 나이 스물일곱. 그가 남긴 건 29개의 노래뿐이었다. 그러나 그 29개가 이후 20세기 대중음악의 뿌리가 된다. 에릭 클랩턴은 존슨의 ‘Cross Road Blues’를 처음 들었을 때 “한 인간이 기타에서 그런 소리를 뽑아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처즈는 존슨의 레코딩을 “세상에서 가장 밀도 높은 음악”이라 불렀다.
머디 워터스: 델타의 흙탕물을 도시의 전기로 바꾼 자
Muddy Waters
Muddy Waters (1913–1983)
본명 맥킨리 모건필드(McKinley Morganfield). 어린 시절 진흙탕 속에서 놀기를 좋아해 ‘머디 워터스(Muddy Waters)’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3년 미시시피 델타의 목화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로버트 존슨의 음반을 들으며 기타를 독학했다. 1941년 민속학자 앨런 로맥스(Alan Lomax)가 미시시피를 돌아다니며 블루스 연주자를 녹음했을 때, 로맥스의 마이크 앞에 선 연주자 중 한 명이 머디였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되는 걸 들었다.
1943년, 머디는 트럭 한 대에 짐을 싣고 시카고로 올라왔다. 미시시피의 어쿠스틱 블루스는 시카고의 술집(club)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음악 자체를 바꿔야 했다. 머디는 전기 기타를 들었다.아무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 때, 그는 델타의 느리고 무거운 블루스를 전기로 증폭시켰다. 그 결과물은 — 야성적이고, 관능적이며, 폭발적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일렉트릭 블루스(Electric Blues)’라 부르는 장르의 탄생이다.
“블루스가 죽어가고 있다고? 천만에. 블루스는 사라질 수 없다. 사람들이 고통받는 한 블루스는 있다.”
— 머디 워터스
1962년, 한 영국 밴드가 자신들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논의했다. 리더 브라이언 존스가 머디 워터스의 노래 목록을 뒤지다가 한 곡의 제목을 골랐다. ‘Rollin’ Stone’. 그렇게 롤링 스톤스가 탄생했다. 레드 제플린, 지미 핸드릭스, 에릭 클랩턴 — 이들이 공통으로 꼽는 근원적 영향, 그 자리에는 언제나 머디 워터스가 있다. 시카고의 흙탕물 같은 그의 음악은, 영국 로큰롤을 통해 전 세계로 흘러나갔다.
B.B. 킹: 비브라토 하나로 세계를 사로잡은 자
B.B. King
B.B. King (1925–2015)
라일리 B. 킹(Riley B. King). 그가 기타에 ‘루실(Lucille)’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1949년의 사건 때문이다. 아칸소 주의 한 댄스홀에서 연주하던 중 싸움이 나 불이 났다. 킹은 무대에서 뛰쳐나왔다가, 자신의 기타가 불 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뛰어 들어가 기타를 구해 나오면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불의 원인은 루실이라는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다툼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기타에 루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짓 때문에 목숨을 걸지 않기 위해.”
B.B. 킹을 구분 짓는 것은 그의 비브라토(Vibrato)다. 기타 현을 누른 채로 손가락을 빠르게 떨어 음정을 미세하게 흔드는 이 주법은, 마치 사람의 목소리처럼 기타를 노래하게 만든다. 킹은 허밍을 하면서 동시에 기타를 연주하기 어렵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선택했다 — 기타가 노래하게 만들겠다고. 루실은 그의 목소리가 되었다. 음 하나에 담긴 그의 비브라토는, 수천 개의 음을 쏟아내는 연주자들의 기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다.
“음표가 아름다운 게 아니다. 그 음표를 어떻게 연주하느냐가 아름다운 것이다.”
— B.B. 킹
1969년 발표한 ‘The Thrill Is Gone’은 오케스트라 편곡을 입힌 블루스였다. 전통주의자들은 “블루스를 팔아먹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곡은 그라미상을 받았고, 수백만 명의 청중에게 블루스를 처음 소개했다. B.B. 킹은 팝 스타가 된 뒤에도 1년에 300회 이상의 공연을 이어갔다. 그는 연주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았다. 2015년,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공연했다. 90년 가까운 생애 동안 그가 ‘루실’이라 이름 붙인 기타는 모두 42대를 넘었다 — 각각의 루실이 각각의 시절을 담고 있다.
세 가지 고통, 하나의 뿌리
| 구분 | 로버트 존슨 | 머디 워터스 | B.B. 킹 |
|---|---|---|---|
| 활동 근거지 | 미시시피 델타 | 시카고 | 멤피스 → 전 세계 |
| 핵심 혁신 | 기타 독주법 발명 | 전기 블루스 개척 | 비브라토 창조 |
| 블루스 유형 | 델타 블루스 | 시카고 블루스 | 모던 블루스 |
| 대표 영향 | 에릭 클랩턴, 로버트 플랜트 |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 U2, 에릭 클랩턴 (재차) |
| 대표곡 | Cross Road Blues | Hoochie Coochie Man | The Thrill Is Gone |
세 사람의 관계는 직선적이지 않다. 존슨은 머디에게 영감을 주었고, 머디는 영국 청년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 영국 청년들이 B.B. 킹의 이름을 미국 젊은이들에게 역수출했다. 역설적이게도 B.B. 킹이 미국 주류에서 인정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머디의 음악으로 성장한 롤링 스톤스였다. 스톤스가 미국 투어 중 자신들의 우상 B.B. 킹을 오프닝 무대에 세웠고, 그것이 킹을 대중 앞에 노출시켰다. 블루스는 미시시피에서 런던으로, 다시 미국으로 — 그 긴 여정의 모든 길목에 이 세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세 사람의 차이는 단순한 지역과 시대의 차이가 아니다. 존슨의 블루스는 한 개인의 깊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것이다 — 위기의 울부짖음, 방랑의 쓸쓸함. 머디의 블루스는 공동체의 목소리다 — 델타를 등지고 도시로 올라온 수십만 흑인 이민자들이 공유한 분노와 욕망. B.B. 킹의 블루스는 그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법이다 — 루실의 현 하나가 뽑아내는 음정 하나가, 모든 언어를 초월한다.
“블루스는 음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노래로 바꾸는가 — 그것이 블루스다.”
— B.B. 킹
로버트 존슨은 고통을 신음으로 토해냈다. 머디 워터스는 그 신음에 전기를 달았다. B.B. 킹은 그것을 음악이라 부를 수 있는 언어로 다듬었다. 세 사람이 함께, 블루스를 한 지역의 노래에서 인류의 언어로 만들었다. 록, 소울, R&B, 힙합 — 20세기 이후 대중음악의 모든 감정적 어휘는 미시시피 델타의 흙먼지에서 시작되었다. 그 흙먼지 속에, 스물일곱 살에 죽은 한 남자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
대표 앨범 및 곡
- 로버트 존슨: Cross Road Blues (1936), Sweet Home Chicago (1936), Love in Vain (1937), Hellhound on My Trail (1937)
- 머디 워터스: Rollin' Stone (1950), Hoochie Coochie Man (1954), Mannish Boy (1955), Got My Mojo Working (1957)
- B.B. 킹: Three O'Clock Blues (1951), Every Day I Have the Blues (1955), The Thrill Is Gone (1969), Riding with the King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