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세계 경제는 대공황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공장은 멈추었고, 실업자는 거리에 넘쳤으며, 고전 경제학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위기 앞에서 두 경제학자가 정반대의 진단을 내렸다. 한 사람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개입이야말로 문명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두 사람의 논쟁은 단순히 경제 정책의 다툼이 아니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시장은 신뢰할 수 있는가 — 이 질문들을 둘러싼 20세기의 가장 치열한 지적 대결이었다. 그 여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두 사람의 궤적
케인즈 (1883–1946) ·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 · 『일반이론』 —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하이에크 (1899–1992) · 오스트리아 빈 출신 · 『노예의 길』 — 자유시장의 수호자
케인즈: 시장은 장기적으로 우리를 모두 죽인다
1883–1946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883년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 강사였고, 어머니는 후에 케임브리지 시장을 역임했다. 케인즈 자신은 이튼과 킹스 칼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수학과 철학에서 탁월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바꾼 것은 경제학으로였다.
젊은 케인즈는 고전파 경제학의 신봉자였다.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찾는다, 실업은 일시적이며 임금 조정을 통해 자연히 해소된다 — 이것이 교과서의 문법이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이 닥쳤다. 실업률은 25%를 향해 치솟았고, 이론의 자동복원 메커니즘은 작동하지 않았다. 케인즈는 교과서를 덮고 새 원고를 펼쳤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경제학자들이 폭풍의 계절에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 폭풍이 지나가면 바다가 다시 잠잠해진다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너무나 쉽고 너무나 쓸모없는 과업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즈, 『화폐 개혁론』 (1923)
1936년 발표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은 경제학의 지형을 바꾸었다. 케인즈의 핵심 통찰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다. 경제 전체의 수요가 부족할 때 시장은 스스로 회복하지 못한다. 기업은 수요가 없으면 투자하지 않고, 소비자는 일자리가 없으면 소비하지 않는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가 직접 지출을 늘려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케인즈는 자신의 이론을 의사소통의 예술로 포장하는 데 탁월했다. 그는 정부의 재정 지출을 “구덩이를 파고 다시 메우는 일”로 표현했다. 내용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일하고 돈을 벌면 소비가 늘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였다. 케임브리지의 사교 클럽 “블룸즈버리 그룹”에서 버지니아 울프, 버트런드 러셀과 어울렸던 그는 경제학자이기에 앞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언어는 정책 입안자들을 움직였다.
하이에크: 지식은 분산되어 있고, 가격이 전부다
1899–1992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하이에크는 1899년 빈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금기에 유년을 보낸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포병 장교로 참전했다. 귀국 후 경제학을 공부하며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제자가 되었고, 오스트리아 학파의 적통을 이었다. 1931년 런던정경대학에 초빙되면서 케인즈와의 긴 대결이 시작되었다.
하이에크의 출발점은 지식에 대한 겸손함이었다. 그는 경제란 어떤 중앙의 두뇌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분산된 정보의 총합이라고 주장했다. 수백만 개인이 각자의 상황에서 갖고 있는 정보 — 특정 공장의 재고량, 특정 항구의 선박 지연, 특정 지역의 날씨 — 를 어떤 계획 당국도 수집하거나 처리할 수 없다. 오직 가격 메커니즘만이 이 흩어진 지식을 실시간으로 통합하고 신호를 보낸다.
“가격 체계는 인간이 설계하지 않았지만, 설계했더라면 천재라 불렸을 메커니즘이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지식의 사용」 (1945)
따라서 정부의 개입은, 설령 선의에서 출발했다 해도, 필연적으로 이 정보를 왜곡한다. 인위적으로 낮춘 이자율은 기업들로 하여금 수익성 없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게 만들고, 결국 더 큰 불황을 불러온다. 하이에크는 대공황 자체를 1920년대의 신용 팽창이 낳은 필연적 교정 과정으로 보았다. 고통스럽지만 시장이 스스로 정화하도록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44년 출판된 『노예의 길』은 하이에크의 사상적 선언문이었다. 그는 경제 계획이 나치즘과 소비에트 전체주의로 향하는 문을 연다고 경고했다. 자유 경제 없이 자유 사회는 없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은 전후 서방 지식인 사회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비판자들은 그것이 공포 마케팅이라고 했고, 지지자들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고라고 했다.
편지 전쟁: 두 경제학자가 나눈 가장 우아한 설전
두 사람의 논쟁은 학술지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 1932년, 케인즈와 하이에크는 『타임스』지에 공개 편지를 주고받으며 대공황 대책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케인즈는 저축을 미덕으로 부추기는 것이 경기를 더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절약이 사회 전체로는 오히려 수요를 줄이는 “절약의 역설”이었다. 하이에크는 그것이 문제의 근본을 오진한 것이라 반박했다.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이 사생활에서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 폭격이 심해지자, 케인즈는 킹스 칼리지에 대피한 하이에크에게 방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저작들에 대한 하이에크의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원고를 출판사에 추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귀하의 책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도덕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귀하가 선을 어디에 긋느냐입니다.”
— 케인즈가 하이에크에게 보낸 편지, 1944년
이 편지는 두 사람의 논쟁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케인즈도 계획경제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혼합경제를, 필요할 때만 정부가 개입하는 시스템을 원했다. 하이에크도 모든 복지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인정했다. 그들의 진짜 차이는 “얼마나”와 “어떻게”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케인즈는 시장을 유용하지만 결함 있는 도구로 보았다. 때로는 수선이 필요하고, 수선의 도구는 정부다. 하이에크는 시장을 어떤 인간의 이성도 복제할 수 없는 진화적 질서로 보았다. 그 질서를 고치려는 시도 자체가 더 큰 손상을 초래한다.
케인즈의 시장
- 시장은 수요 부족으로 실패할 수 있다
- 정부 지출로 경기 침체를 막아야 한다
- 단기 문제는 단기에 해결해야 한다
- 유효 수요가 고용을 결정한다
- 재정 정책이 가장 강력한 도구다
하이에크의 시장
- 시장은 인간 이성을 초월한 정보 처리기다
- 정부 개입은 더 큰 왜곡을 낳는다
- 가격이 모든 경제 지식을 담고 있다
- 불황은 과잉 투자의 필연적 교정이다
- 자유 경제 없이 자유 사회는 없다
역사가 두 번 심판하다
1946년 케인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사상은 이미 서방 경제 정책의 정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전후 황금기 — 1945년부터 1973년까지 서방 선진국들이 경험한 지속적 성장과 낮은 실업률 — 는 케인즈주의의 승리처럼 보였다. 정부는 재정 정책으로 경기를 미세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그런데 1970년대, 역사가 방향을 틀었다. 오일 쇼크와 함께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시에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출현했다. 케인즈 이론의 틀 안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실업이 낮고, 실업이 높으면 인플레이션이 낮다는 필립스 곡선이 무너졌다. 하이에크에게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1974년, 하이에크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가,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를 무기로 집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이에크의 책을 손에 들고 연설했다. 대처는 집권당 회의에서 하이에크의 『자유의 구조』를 꺼내 탁자에 내리치며 “이것이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2008년,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났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자 각국 정부는 앞다투어 케인즈식 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미국의 7천억 달러 구제금융, 중국의 4조 위안 경기 부양책. 위기의 순간, 세계는 다시 케인즈에게 돌아왔다. 영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이를 “케인즈의 귀환”이라 불렀다.
두 사람의 이론은 교대로 역사에 의해 검증되고, 교대로 역사에 의해 반박당했다. 어쩌면 그것이 진실에 가장 가까운 답일지도 모른다. 시장은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작동하지만, 때로는 극단적으로 실패한다. 정부의 개입은 때로 경기를 구하지만, 남용되면 더 깊은 왜곡을 낳는다. 케인즈가 없었다면 우리는 공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몰랐을 것이고, 하이에크가 없었다면 우리는 개입의 한계를 그렇게 빨리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