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야.” 거트루드 스타인이 헤밍웨이에게 던진 이 말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문학을 정의하는 레이블이 되었다. 전쟁의 참화를 목격한 젊은이들, 기존의 가치관에 환멸을 느낀 세대. 그들 중 세 명이 20세기 미국 문학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헤밍웨이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었고, 피츠제럴드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제대했으며, 포크너는 캐나다 공군에서 훈련을 받다가 종전을 맞았다. 세 작가 모두 전쟁을 ‘놓쳤다’는 감각을 공유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은 미국이 약속했던 순수함, 진보에 대한 믿음, 그리고 아버지 세대의 확신이었다.
헤밍웨이: 빙산 아래의 진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일리노이 오크파크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캔자스시티 스타 기자가 되었고, 1차 대전 때 적십자 구급차 운전사로 이탈리아에 갔다. 18세의 헤밍웨이는 박격포 파편에 맞아 200개가 넘는 파편상을 입었다. 이 경험은 그의 문학적 DNA가 되었다.
전후 파리에서 헤밍웨이는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냈다. 짧은 문장, 단순한 단어, 감정의 절제. 그는 이것을 ‘빙산 이론’이라 불렀다. 빙산의 8분의 7은 물 아래 있다. 작가가 알고 있는 것 중 8분의 1만 보여줘도, 독자는 나머지를 느낄 수 있다. 생략된 것이 쓰인 것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진정한 문장을 쓰라. 네가 아는 가장 진정한 문장 하나를 써라.”
『무기여 잘 있거라』(1929)에서 프레드릭 헨리는 전쟁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탈영한다. 사랑하는 여인 캐서린과 함께 스위스로 도망치지만, 그녀는 출산 중 죽는다. 헤밍웨이는 비극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저 “비 속으로 걸어 호텔로 돌아갔다”라고만 쓴다. 독자의 가슴에 구멍을 뚫는 것은 묘사되지 않은 고통이다.
『노인과 바다』(1952)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인다. 마침내 잡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들에게 뜯긴다. 뼈만 남은 물고기와 함께 돌아온 노인은 다음 항해를 꿈꾼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피츠제럴드: 재즈 시대의 연대기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네소타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군 복무 중 앨라배마의 사교계 미인 젤다 세이어를 만났다. 젤다는 그가 성공한 작가가 되어야만 결혼하겠다고 했다. 피츠제럴드는 첫 소설 『낙원의 이쪽』(1920)으로 하룻밤에 유명해졌고, 젤다와 결혼했다.
스콧과 젤다는 ‘재즈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호텔 분수대에서 수영하고, 택시 지붕 위에서 춤추고, 돈을 물 쓰듯 썼다. 피츠제럴드는 이 시대를 화려함과 공허함의 이중주로 기록했다. 그의 산문은 마치 샴페인처럼 반짝였지만, 그 밑에는 언제나 슬픔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물살을 거슬러 배를 저어간다,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
『위대한 개츠비』(1925)는 미국 문학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다. 제이 개츠비는 가난한 청년 제임스 개츠로 태어나 부를 축적하고, 옛 연인 데이지를 되찾으려 한다. 롱아일랜드 저택에서 밤마다 파티를 열지만, 데이지가 사는 이스트에그 쪽 녹색 불빛만 바라본다. 아메리칸 드림의 부패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린 작품은 없었다.
출간 당시 『개츠비』는 상업적 실패였다. 피츠제럴드의 말년은 비참했다. 젤다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는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며 알코올에 빠졌다. 44세에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 그는 자신이 실패한 작가라고 믿었다. 『개츠비』가 미국 문학의 성전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의 사후였다.
포크너: 남부의 유령을 깨운 자

윌리엄 포크너는 미시시피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며, 우체국장으로 일하다 해고당했다. “나는 정부의 변덕에 따라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싫다”고 사직서에 썼다. 이 완고함이 그의 문학을 만들었다.
포크너는 미시시피를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이 2,400평방마일의 땅에서 그는 미국 남부의 전설을 썼다. 노예제의 유산, 남북전쟁의 상처, 몰락하는 귀족 가문, 가난한 백인, 흑인 하인들. 한 지역의 역사가 인류 전체의 비극이 되었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가지도 않았다.”
『음향과 분노』(1929)는 콤프슨 가문의 몰락을 네 개의 시점으로 그린다. 첫 번째 화자 벤지는 지적 장애인이다. 시간은 뒤섞이고, 과거와 현재가 구별되지 않는다. 포크너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조이스의 실험을 미국 남부의 붉은 흙 위에 이식한 것이다.
포크너는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수상 연설에서 그는 인간이 단순히 견딜 뿐 아니라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핵전쟁의 공포가 세계를 뒤덮던 시대에, 그는 문학의 사명이 “인간 영혼의 오래된 진실들 — 사랑과 명예, 연민과 자긍심, 희생과 고통”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세 가지 아메리카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미국을 그렸다. 헤밍웨이는 미국을 떠났다. 파리, 스페인, 쿠바, 아프리카를 떠돌며 국경 없는 남성성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의 미국은 탈출해야 할 곳이었고, 세계 어디서든 진짜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피츠제럴드는 미국의 약속을 믿었다. 동부의 부유층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었고, 재즈 시대의 화려함에 매혹되었다. 하지만 그 꿈이 얼마나 부패하고 공허한지도 가장 잘 알았다. 개츠비의 비극은 피츠제럴드 자신의 비극이었다.
포크너는 미국의 한 귀퉁이에 머물렀다. 요크나파토파는 미시시피였고, 미시시피는 미국 남부였으며, 남부는 노예제라는 원죄를 안고 있었다. 포크너는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역사의 유령들이 어떻게 살아있는 자를 따라다니는지 보여주었다.
1920년대 파리의 카페, 뉴욕의 펜트하우스, 미시시피의 고택에서 세 젊은 작가가 각자의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알았고, 서로의 작품을 읽었다.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를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했고,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를 숭배하면서도 질투했다. 포크너는 두 사람 모두를 뛰어넘으려 했다. 이 경쟁과 우정 속에서 미국 문학의 황금기가 탄생했다.
대표작
- 어니스트 헤밍웨이: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노인과 바다(1952)
- F. 스콧 피츠제럴드: 낙원의 이쪽(1920), 위대한 개츠비(1925), 밤은 부드러워(1934)
- 윌리엄 포크너: 음향과 분노(1929),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930), 압살롬, 압살롬!(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