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년 피렌체. 도시 전체가 술렁였다. 시뇨리아 궁전의 대회의실 양쪽 벽에 두 개의 대작이 그려질 예정이었다. 한쪽은 50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른 한쪽은 30대의 신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20대 청년이 있었다. 라파엘로 산치오.
역사상 이렇게 세 명의 천재가 한 도시에서 동시에 활동한 적이 있었을까? 그들은 서로를 의식했고, 경쟁했고, 때로는 경멸했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야말로 르네상스를 완성시킨 원동력이었다.
흥미로운 건, 세 사람이 추구한 ‘완벽’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완성하지 않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력서를 보면 황당하다.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완성한 그림은 20점도 안 된다. 그가 67년 평생 남긴 노트는 7천 장이 넘는데, 거기엔 그림보다 해부학, 기계, 물의 흐름, 새의 비행에 대한 기록이 훨씬 많다.
그에게 그림은 세상을 이해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그림을 미완성으로 남겼다. 이해했으면 됐지, 굳이 끝낼 필요가 있나?
모나리자1503-1519
최후의 만찬1495-1498
비트루비우스적 인간1490
모나리자를 보자.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16년 동안 들고 다니며 계속 수정했다. 그가 발명한 ‘스푸마토’ 기법—윤곽선 없이 색을 연기처럼 퍼지게 하는 기술—은 수십 겹의 얇은 유약을 쌓아 올려야 했다. 한 겹 바르고 몇 달을 기다렸다.
“예술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단지 포기될 뿐이다.”
그의 말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태도를 경멸했다.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하는 자”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에게 완성이란 애초에 목표가 아니었다.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미켈란젤로: 돌 속에 갇힌 영혼을 꺼내는 자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화가가 아닌 조각가로 여겼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의뢰받았을 때, 그는 격렬하게 거부했다. “나는 화가가 아닙니다”라고 교황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결국 4년간 천장에 매달려 343개의 인물을 그렸다. 목이 뒤로 젖혀진 채로. 물감이 눈에 떨어지는 것도 참으며. 완성했을 때 그의 목은 영구적으로 손상되었다.
다비드1501-1504
아담의 창조1508-1512
피에타1498-1499
그의 다비드상을 보면 조각가로서의 천재성이 드러난다. 5미터 높이의 대리석 앞에 선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비드는 이미 돌 안에 있었다. 나는 그를 가두고 있던 것들을 제거했을 뿐이다.”
이게 그의 철학이었다. 예술가는 창조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완벽한 형태는 이미 존재하고, 예술가의 임무는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그토록 역동적이면서도 필연적으로 보인다. 마치 원래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89세까지 살며 끊임없이 작업했다. 레오나르도의 탐구적 호기심도, 라파엘로의 부드러운 조화도 그에겐 없었다. 대신 거의 광적인 몰입이 있었다.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빵 한 조각으로 버티며 작업했다. 그에게 예술은 쾌락이 아니라 고행이었다.
라파엘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 자
라파엘로는 두 선배와 많이 달랐다. 레오나르도의 은둔적 성격도, 미켈란젤로의 괴팍한 기질도 없었다. 그는 사교적이었고, 매력적이었고,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그리고 천재적으로 배웠다. 피렌체에 도착한 20대의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의 스푸마토를, 미켈란젤로의 인체 표현을 흡수했다. 하지만 단순히 모방한 게 아니었다. 그는 두 거장의 장점을 융합해 자신만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아테네 학당1509-1511
시스티나 성모1512
갈라테아의 승리1512
아테네 학당은 그의 역작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50여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중앙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도를, 구석에서 홀로 턱을 괴고 있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은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했다.
“아름다움을 그리려면 많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은 드물기에, 나는 내 마음속의 이상을 따른다.”
라파엘로의 비극은 그가 37세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장례식에 로마 전체가 애도했다. 교황은 그를 판테온에 묻었다.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여기 라파엘로가 잠들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자연은 자신이 정복당할까 두려워했고, 그가 죽자 자신도 죽을까 두려워했다.”
세 개의 완벽, 세 개의 길
1520년, 라파엘로가 죽었다. 그로부터 4년 뒤 레오나르도도 세상을 떠났다. 미켈란젤로만 홀로 남아 반세기를 더 살며 르네상스의 끝을 지켜봤다.
세 사람은 모두 ‘완벽’을 추구했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레오나르도에게 완벽은 끝없는 탐구였다. 미켈란젤로에게 완벽은 고통스러운 발견이었다. 라파엘로에게 완벽은 우아한 조화였다.
어쩌면 르네상스의 위대함은 이 세 가지 길이 공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천재들이 서로를 의식하며 각자의 한계를 밀어붙인 결과.
우리는 어떤 완벽을 추구하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