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미래 예측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질문이다.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 것인가, 우리가 만드는 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 이 물음들을 우주선과 로봇과 외계 행성의 언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어슐러 K. 르 귄. 세 작가는 같은 장르 안에서 전혀 다른 내일을 그렸다.
20세기 중반 SF는 하나의 황금기를 지나고 있었다. 핵폭탄이 터지고 인공위성이 궤도에 올라가던 시대,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위험이 동시에 극대화되던 때였다. 작가들은 실험실 밖으로 빠져나온 과학을 소설의 언어로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잡은 것은 각각 달랐다. 아시모프는 논리와 체계를, 클라크는 경이와 숭고를, 르 귄은 타자와 공감을 붙들었다.
세 상상가의 생애
아이작 아시모프 (1920–1992) · 러시아 페트로비치 출생 · 『파운데이션』(1951), 로봇 3원칙의 창안자
아서 C. 클라크 (1917–2008) · 영국 서머싯 출생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정지위성 궤도 제안자
어슐러 K. 르 귄 (1929–2018) ·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 『어둠의 왼손』(1969), 『빼앗긴 자들』(1974)
아시모프: 논리로 미래를 설계한 자
1920–1992
아이작 아시모프가 열한 살 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뉴욕의 사탕가게에 SF 잡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잡지들을 두고 “저질 문학”이라 했지만, 아시모프에게는 평생의 집이 되었다. 열여덟 살에 첫 단편을 투고하고, 스물세 살에 〈나이트폴(Nightfall)〉을 발표해 SF 독자들을 경악시켰다. 별이 하나뿐인 세계에서 2000년마다 찾아오는 어둠에 문명이 붕괴된다는 이야기. 아시모프 특유의 방식이었다 — 하나의 사고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그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로봇 3원칙이다. 1. 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단 1원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 3. 로봇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단 1·2원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 이 세 줄의 규칙은 단순해 보이지만, 아시모프는 그 안의 모순과 허점을 수십 편의 소설로 탐구했다. 그의 로봇 이야기들은 사실상 윤리학 강의였다. “규칙을 만들면 반드시 규칙의 틈이 생긴다”는 교훈을 공학적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로봇을 쓰지 않는다. 로봇이 우리 자신의 반영임을 보여주기 위해 쓴다.”
—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더 대담한 질문을 던진다. 수학으로 역사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면? 하리 셀든이 창안한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은 개인의 행동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수백억 명의 집단 행동은 통계적으로 예측된다는 발상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과 중세의 암흑기를 물리학의 방정식으로 다시 쓴 것이다. SF이기도 하지만 역사철학이기도 한 이 시리즈는, 합리적 계획으로 인류의 비극을 줄일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낙관을 우주 스케일로 확장했다.
아시모프는 평생 500권이 넘는 책을 썼다. 소설뿐 아니라 생화학 교재, 성서 해설, 셰익스피어 안내서까지. 그는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곳을 떠나는 것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스스로를 ‘클라우스트로필리아(claustrophilia, 밀폐된 공간 선호)’ 환자라 부른 이 남자가 만든 우주는 역설적으로 인류 상상력의 가장 넓은 지도였다.
클라크: 경이를 공학으로 증명한 자
1917–2008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아서 C. 클라크는 과학 잡지에 논문 하나를 기고했다. 제목은 “지구 외부 중계 기지(Extra-Terrestrial Relays)”. 지구에서 약 35,786km 고도에 통신위성을 올리면 지구 전체를 커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궤도에 위성을 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20년 후 그 궤도는 ‘클라크 궤도(Clarke orbit)’라 불리게 되었고, 지금 우리가 쓰는 GPS와 위성방송은 그 논문 위에서 작동한다. SF 작가가 현실 세계의 인프라를 설계한 것이다.
클라크의 SF는 아시모프와 달리 논리의 쾌감보다 경외의 감각을 추구한다. 그의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의 진화를 촉발한 검은 모노리스는 어디서 왔는지, 무엇인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이다. HAL 9000이 임무를 위해 인간을 살해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은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 정반대편에 서 있다. 윤리 규칙이 아니라, 규칙들이 충돌할 때 기계가 스스로 내리는 판단 — 그 공포.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아서 C. 클라크, 클라크의 제3법칙
클라크의 세 가지 법칙 중 가장 유명한 제3법칙이다. 그러나 덜 알려진 제1법칙도 날카롭다. “저명한 나이 든 과학자가 무언가가 가능하다고 말하면, 그는 거의 확실히 옳다. 무언가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는 아마 틀렸다.” 클라크 자신이 그 증거였다. 1950년대에 달 여행을 소설로 쓸 때 많은 이들이 허무맹랑하다고 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 클라크는 옆에서 그 중계를 해설하고 있었다.
만년의 클라크는 스리랑카 콜롬보에 살았다. 영국인이지만 동양의 섬나라를 선택한 이 결정에 대해 그는 “산호초와 스쿠버 다이빙 때문”이라고 했지만, 독자들은 그것이 또 하나의 클라크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러나 완벽하게 옳은 선택.
르 귄: 타자를 이해하는 SF를 쓴 자
1929–2018
어슐러 K. 르 귄의 아버지는 인류학자 알프레드 크뢰버였고, 어머니는 아메리카 원주민 이시(Ishi)의 삶을 기록한 작가 테오도라 크뢰버였다. 타자(他者)를 이해하고 기록하는 것이 가업이었다. 르 귄은 그 유산을 우주로 가져갔다. 그녀의 SF에서 외계 존재와의 접촉은 ‘정복’이나 ‘위협’이 아니라 번역의 문제다. 다른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1969년 발표된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은 SF사를 바꾼 소설이다. 행성 게텐의 인간들은 성(性)이 없다. 한 달에 며칠만 임시적으로 성이 생기는 ‘케머(kemmer)’ 기간을 제외하면 그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지구 대사 겐리 아이는 성별이 없는 존재를 이해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독자들은 겐리 아이를 통해 자신이 젠더라는 범주에 얼마나 깊이 갇혀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소설은 묻는다. 우리가 보편이라 믿는 것들은 과연 보편인가?
“진정한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 어슐러 K. 르 귄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1974)에서 르 귄은 아나키즘과 자본주의를 두 행성의 형태로 대비시킨다. 쌍둥이 행성 우라스(자본주의)와 아나레스(아나키즘) 사이의 물리학자 셰벡은 두 세계를 모두 살면서 어느 쪽도 유토피아가 아님을 발견한다. 아나키즘적 이상 사회조차 그 나름의 억압과 동조 압력이 있다는 것. 르 귄은 독자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정확하게 만들어준다.
르 귄이 SF에 가져온 것은 인류학적 상상력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SF가 얼마나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 서사에 갇혀 있었는지를 의식했다. 모험하는 백인 남자 영웅, 기술을 지배하는 엔지니어, 외계와 싸우는 군인. 르 귄은 이 틀을 해체하지 않고 그냥 무시했다.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 더 강하게 읽힌다는 사실이, 그녀가 옳았다는 증거다.
세 가지 미래, 세 가지 질문
세 작가의 SF는 같은 장르 안에서 전혀 다른 인식론적 입장에서 출발한다. 아시모프는 세계가 원칙적으로 이해 가능하다고 믿는다. 충분히 논리적인 체계를 세우면 혼돈도 예측 가능해진다. 클라크는 세계가 궁극적으로 신비롭다고 느낀다. 과학은 그 신비에 다가가는 도구지만 신비 자체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르 귄에게 세계는 본질적으로복수(複數)다. 단 하나의 올바른 이해는 없다. 이해는 항상 위치와 관점에 따라 다르다.
아시모프
논리의 SF
사고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원칙, 체계, 역설. 합리성의 한계를 합리적으로 탐구한다.
클라크
경이의 SF
기술이 종교적 숭고의 영역에 닿는 순간을 포착한다. 설명보다 체험. 과학이 낳는 신비.
르 귄
공감의 SF
타자를 이해하는 상상력. 젠더, 문화, 정치 체제의 당연함을 낯설게 만드는 인류학적 시선.
흥미롭게도 세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아시모프와 클라크는 1953년 만나 ‘클라크-아시모프 조약’을 맺었다. 인터뷰에서 클라크는 아시모프가 최고의 SF 작가라고 인정할 것, 아시모프는 클라크가 최고의 SF 과학자라고 인정할 것. 농담처럼 맺어진 이 조약에는 두 사람의 상호 존중이 담겨 있었다. 르 귄은 아시모프의 작품을 읽었지만 그가 구축한 남성 중심의 과학 영웅 신화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했다. 같은 시대, 같은 장르 안에서 이렇게 다른 우주들이 공존했다.
아시모프는 미래에 법칙을 주었고, 클라크는 경이를 주었으며, 르 귄은 우리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을 주었다. 셋이 합쳐지면 SF라는 장르의 이유가 된다.
SF가 실제로 바꾼 것들
세 작가의 영향은 문학 안에 머물지 않았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현대 AI 윤리 논쟁의 출발점으로 자주 인용된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유용하다. 원칙들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AI 정렬 문제(AI alignment problem)와 정확히 겹치기 때문이다. 클라크의 정지위성 궤도 개념은 인류의 통신 인프라를 바꿨다. 르 귄이 던진 젠더 해체의 상상력은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 SF의 한 줄기를 만들어냈다.
세 사람이 공통으로 보여준 것이 있다면, SF의 본령이 예측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시모프는 인터넷을 예측하지 못했고, 클라크는 스마트폰을 예측하지 못했으며, 르 귄은 소셜미디어의 젠더 전쟁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기한 질문들 — 규칙이 충돌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기술이 신비가 될 수 있는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 은 오늘날 더 절박하다. 좋은 SF는 미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필요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시모프는 뉴욕의 아파트 서재에서 책상 앞을 떠나지 않으며 우주를 만들었고, 클라크는 스리랑카 바닷속 산호초를 헤엄치며 별을 생각했으며, 르 귄은 포틀랜드 자택에서 말년까지 쓰고 강연하고 번역했다. 세 사람 모두 먼 곳을 상상했지만, 그들이 쓴 것은 결국 지금 여기, 이 세계를 사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표작
-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Foundation, 1951), 나는 로봇이다(I, Robot, 1950), 강철 동굴(The Caves of Steel, 1954), 영원의 끝(The End of Eternity, 1955)
- 아서 C.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 1953), 라마와의 랑데부(Rendezvous with Rama, 1973), 낙원의 샘(The Fountains of Paradise, 1979)
- 어슐러 K. 르 귄: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 1969),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 1974), 오멜라스를 떠나며(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1973),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The Word for World is Forest,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