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하나의 믿음 위에 서 있었다 — 언어는 의미를 담고, 구조는 사물을 질서 지우며, 이성은 진리에 닿는다는 믿음. 20세기 후반 파리에서 세 사람이 그 토대를 흔들었다. 그들은 구조를 해부했고, 권력을 폭로했으며, 차이를 해방시켰다. 그 이후로 철학은 예전의 확신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세 사람은 같은 시대 파리에 살았지만, 서로의 길을 명시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데리다와 푸코는 때로 날카롭게 부딪혔고, 들뢰즈는 두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 세 철학자는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라는 이름으로 묶이며 20세기 후반 인문학 전체를 재편했다. 그들이 던진 물음들 — 텍스트란 무엇인가,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차이를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은 지금도 살아있다.
포스트구조주의란
1960년대 프랑스에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인류학(레비스트로스), 정신분석(라캉), 문학비평을 석권했다. 구조주의는 표면의 현상 아래 불변하는 보편 구조가 있다고 주장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그 ‘구조’의 안정성 자체를 의심했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끝없이 미끄러진다. 권력은 구조 안에 각인된다. 동일성보다 차이가 먼저다. 이 세 개의 쐐기가 서양 형이상학의 기초를 흔들었다.
데리다: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크 데리다(1930–2004)는 알제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출신, 유대인, 알제리인 — 그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경계의 ‘바깥’에 있었다. 이 주변적 위치는 그가 평생 중심과 주변, 안과 밖, 원본과 파생이라는 이분법에 집착하게 만든 실존적 뿌리일지도 모른다.
1967년, 서른일곱의 데리다는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출판했다.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 『쓰기와 차이』. 철학사에서 이 정도의 생산성을 보여준 해는 드물다. 그의 핵심 개념은 해체(déconstruction)다. 하지만 해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텍스트 안에서 텍스트가 스스로 자기를 해체하는 운동을 추적하는 것이다.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Il n’y a pas de hors-texte.)”—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1967)
이 선언은 자주 오해된다. 데리다가 세계가 텍스트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한 것은 ‘컨텍스트’ 바깥에서 텍스트를 순수하게 읽어낼 준거점이 없다는 것이다. 의미는 맥락에서 맥락으로 미끄러지고, 원본 의미를 고정할 ‘초월적 기의(transcendental signified)’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리다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차연(différance)이다. 그는 프랑스어 ‘différence’의 철자를 ‘différance’로 교묘하게 바꿨다. 발음은 같지만 글자가 다르다 — 이 차이는 오직 쓰기에서만 보인다. 말하기의 우위, 현전(présence)의 철학을 전복하는 순간이다. 의미는 현재에 현전하지 않고, 다른 의미와의 차이와 지연(defer) 속에서만 생산된다.
세 번의 입시 낙방과 파리 입성
데리다는 고등사범학교(ENS) 입시에 두 번 낙방했다. 당시 그는 알제리에서 파리로 막 올라온 이방인이었고, 낯선 프랑스 지식 문화에 압도되어 첫 시험에서는 긴장으로 백지를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 번째 도전 끝에 입학한 그는 훗날 그 학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문 중 하나가 되었다. 철학 안의 영원한 이방인이 철학의 중심을 흔들었다.
푸코: 지식은 권력이고, 권력은 지식이다
미셸 푸코(1926–1984)의 철학은 하나의 거대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어떤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어떤 것은 광기나 일탈로 배제되는가 — 그 경계는 누가, 어떻게 긋는가. 그는 이 물음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감옥의 역사, 정신병원의 역사, 성의 역사를 직접 파고들었다.
푸코의 방법론은 계보학(généalogie)이다. 니체에게서 빌려온 이 방법은 기원(origin)이 아닌 출현(emergence)을 추적한다. 역사에는 진보나 목적이 없다. 있는 것은 권력 관계의 우연한 충돌과 그 결과로 형성된 담론(discours)이다. 담론은 단순한 말들의 집합이 아니다 —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누가 말할 자격을 갖는지를 규정하는 규칙의 체계다.
“권력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행사되는 것이다. 그것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1975)
『감시와 처벌』(1975)에서 푸코는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을 분석했다. 중앙 감시탑 하나로 모든 죄수를 관찰할 수 있는 원형 감옥. 죄수들은 감시받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근대 사회는 이 구조를 학교, 병원, 공장, 군대에 복제했다. 규율은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내면화된다 — 이것이 근대 권력의 핵심이다.
후기 푸코는 주체화(subjectivation)와자기 배려(souci de soi)에 집중했다. 콜레주 드 프랑스 마지막 강의들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기를 돌보는 기술’을 탐구했다. 권력 비판에서 해방의 실천으로. 그는 자신이 구축한 비관적 진단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빈 의자
푸코가 1970년부터 1984년 사망 때까지 매년 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는 매번 수백 명이 몰렸다. 강의실은 항상 넘쳤고, 복도까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푸코는 강의 후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빠르게 원고를 덮고 강의실을 나갔다 — 마치 자신의 언어가 또 다른 권력 효과를 낳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그 물러섬 자체가 하나의 철학적 제스처였다.
들뢰즈: 차이는 동일성에 종속되지 않는다
질 들뢰즈(1925–1995)는 세 사람 중 가장 독창적인 형이상학자였다. 데리다가 텍스트를 해체하고 푸코가 권력을 해부하는 동안, 들뢰즈는 서양 철학의 가장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갔다 — ‘존재란 무엇인가’. 그러나 그의 답은 전통과 달랐다. 존재는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différence)다.
『차이와 반복』(1968)에서 들뢰즈는 주장한다.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차이를 동일성의 파생물로 보았다 — A와 B의 차이는 A와 B가 먼저 각자의 동일성을 가진다고 전제한다. 들뢰즈는 이를 뒤집는다. 차이가 먼저다. 동일성은 차이의 반복을 통해 사후적으로 구성될 뿐이다.
“철학의 과제는 차이를 동일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 자체를 사유하는 것이다.”—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1968)
정신분석가 펠릭스 과타리와의 공동작업에서 들뢰즈는 더욱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리좀(rhizome). 나무는 하나의 뿌리에서 위계적으로 뻗어나가지만, 리좀(땅속줄기)은 어느 방향으로도, 어느 지점에서도 연결되고 단절될 수 있다. 잔디, 감자, 균류가 리좀이다. 서양의 사유는 나무 구조였다 — 하나의 기원, 하나의 진리, 하나의 중심. 들뢰즈는 리좀적 사유를 제안했다. 중심 없이, 위계 없이, 어디서나 시작할 수 있는.
들뢰즈에게 철학은 개념을 창조하는 일이었다.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탈주선(ligne de fuite), 되기(devenir) — 그가 만들어낸 개념들은 들뢰즈 텍스트 바깥으로 나와 현대 예술, 건축, 페미니즘 이론, 포스트콜로니얼 연구로 흘러들었다.
창문에서, 그리고 박수 소리
들뢰즈는 말년에 심각한 폐 질환으로 고통받았다. 1995년 11월, 그는 파리 자택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향년 70세. 그의 죽음을 놓고 사고인지 선택인지는 오래 논의되었지만, 생전에 그가 호흡기 문제로 겪었던 고통을 생각할 때 지인들은 그것이 해방의 몸짓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푸코의 부음을 들었을 때 들뢰즈가 보인 반응은 조용한 고개 끄덕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공개적으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알았다.
세 균열을 나란히 놓으면
데리다는 텍스트와 의미를 공략했다. 언어가 의미를 담보한다는 신뢰를 해체했다. 푸코는 진리와 권력의 공모를 파헤쳤다. 진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며, 그 생산에는 권력이 개입한다. 들뢰즈는 존재와 차이를 재사유했다. 동일성의 철학 대신 차이, 생성, 다양성의 존재론을 제안했다. 세 방향의 타격이 합쳐질 때, 서양 형이상학의 세 기둥 — 언어, 진리, 동일성 — 이 동시에 흔들린다.
자크 데리다
1930–2004
해체 · 차연 · 흔적
의미는 어떻게 고정되는가(혹은 고정되지 않는가)?
텍스트는 스스로를 해체한다. 의미는 현전하지 않고 차이와 지연 속에 흔들린다. 기원도, 중심도, 최종 해석도 없다.
미셸 푸코
1926–1984
권력-지식 · 계보학 · 담론
진리는 어떻게 권력과 결탁하는가?
진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 관계 속에서 생산된다. 지식은 중립이 아니다 — 누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다.
질 들뢰즈
1925–1995
차이 · 리좀 · 생성
동일성 없는 존재를 어떻게 사유하는가?
차이가 동일성에 앞선다. 세계는 나무가 아니라 리좀이다. 철학의 임무는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다.
| 구분 | 데리다 | 푸코 | 들뢰즈 |
|---|---|---|---|
| 공략 대상 | 언어와 의미의 안정성 | 진리와 권력의 공모 | 동일성 중심의 형이상학 |
| 핵심 개념 | 해체, 차연, 흔적 | 담론, 계보학, 규율권력 | 차이, 리좀, 생성, 되기 |
| 방법론 | 텍스트 내재적 독해 | 역사적 계보 추적 | 개념의 창조와 배치 |
| 철학적 계보 | 후설·하이데거 비판적 독해 | 니체 계보학, 마르크스 | 스피노자·니체·베르그송 |
| 영향 | 문학비평·법학·젠더 이론 | 역사학·사회학·정치이론 | 예술·건축·정치철학 |
해체 이후의 세계에서
세 사람을 묶는 ‘포스트구조주의’라는 레이블은 사실 그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다. 주로 영미권 학자들이 프랑스 이론을 수입하면서 붙인 편의적 범주다. 데리다는 평생 자신이 ‘해체주의자’라는 것을 불편해했고, 푸코는 어떤 ‘주의’로도 자신을 정의하기를 거부했으며, 들뢰즈는 철학을 ‘이즘’으로 요약하는 것 자체가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세 사람이 인문학에 남긴 충격은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 젠더 이론(주디스 버틀러는 데리다와 푸코 없이 없다), 포스트콜로니얼 연구(호미 바바, 스피박은 들뢰즈와 데리다를 읽었다), 신유물론과 사변적 실재론(그레이엄 하만, 로지 브라이도티는 들뢰즈에서 출발했다)은 이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에 이들을 도마에 올리는 비판도 있다. 모든 진리를 의심하고 모든 담론을 권력으로 환원하면, 결국 사실과 거짓의 구분을 무너뜨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데리다라면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 해체는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물음에 붙이는 것이라고. 그 물음을 닫는 것이 진정한 위험이다.
데리다는 텍스트에 고정된 의미란 없음을 보여주었고, 푸코는 진리가 권력 속에서 생산됨을 폭로했으며, 들뢰즈는 차이 자체를 긍정하는 철학을 창조했다. 세 사람은 우리가 기댄 확신들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 흔들림을 견디는 자만이 다음 사유로 나아갈 수 있다.
구조를 믿었던 자들이 구조를 해체했다. 중심을 의심하면서도 사유를 멈추지 않은 이 세 사람은, 철학이 스스로를 닫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 끝없이 열린 채로, 불편하게, 계속 물음을 품고.
— 포스트구조주의의 세 목소리
처음 읽을 책 세 권
『그라마톨로지』 서론
자크 데리다
1967년. 서론(약 60쪽)만으로도 음성중심주의 비판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1975년. 판옵티콘 분석을 담은 3부. 권력-지식 개념을 가장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천 개의 고원』 서문
들뢰즈 · 과타리
1980년. 「리좀」 서문(약 30쪽). 들뢰즈 사유의 이미지를 가장 선명하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