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세계 음악사를 바꾸는 앨범 하나가 녹음되었다. 주앙 질베르투가 기타를 들고 속삭이듯 노래하는 동안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이 편곡을 짜고,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시가 가사가 되었다. 그 결과물이 보사노바였다. 브라질의 삼바 리듬과 미국 쿨재즈의 화성이 만나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했다 — 속도가 느려지고, 볼륨이 낮아지고, 감정이 절제된 채 더 깊이 스며드는 음악. ‘보사노바(Bossa Nova)’는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경향’이라는 뜻이다. 세 사람은 그 새로운 경향 자체였다.
세 사람의 배경은 각자 달랐다. 조빔은 리우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클래식 음악과 브라질 민속음악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질베르투는 바이아 주 출신으로 기타 하나를 붙들고 코파카바나에 올라온 청년이었다. 모라이스는 외교관이자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다 — 음악계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가사를 썼다. 세 사람이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만남이 빚어낸 것은 필연처럼 느껴진다.
화성의 건축가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의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잠기는 것에 가깝다. 그의 화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음이 하나씩 끼어들어 있다 — 장조 위에 살짝 얹힌 반음, 예상과 0.5초 어긋나는 해결. 그 어긋남이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 마치 파도가 밀려올 때 발밑 모래가 빠져나가는 감각처럼, 그의 음악은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이 편안하다.
조빔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공부하면서 쇼팽, 드뷔시, 라벨을 탐닉했다. 인상주의 음악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하나였다 — 소리는 감정이 아니라 색깔이 될 수 있다는 것. 동시에 그는 리우의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삼바, 쇼루(choro), 바이앙(baião)을 들으며 자랐다. 두 세계를 한 몸에 품은 사람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브라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
1962년 카네기홀에서 열린 보사노바 콘서트는 미국 시장에 브라질 음악을 처음으로 정면 소개한 역사적 공연이었다. 콘서트 자체는 사운드 문제로 평이 좋지 않았지만, 그 이후 스탄 게츠와 조빔이 함께 녹음한 “Getz/Gilberto”(1964)는 그래미를 휩쓸었고 전 세계에 보사노바를 퍼뜨렸다. 앨범에 실린 “The Girl from Ipanema”는 ‘Happy Birthday’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녹음된 곡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조빔의 음악이 단순히 달콤한 열대 팝으로 소비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그가 끊임없이 화성의 복잡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Águas de Março(3월의 물)”에서 짧은 이미지들을 마치 강물처럼 연속으로 흘려보내며 브라질의 우기 끝자락을 음악으로 그렸다. 이 곡은 훗날 브라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1위에 선정된다. 하나의 화음이 얼마나 많은 색깔을 담을 수 있는지를 조빔은 평생에 걸쳐 증명했다.
속삭임의 혁명 — 주앙 질베르투
주앙 질베르투가 보사노바에 기여한 것은 작곡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는 기타 연주법 자체를 바꾸었다. 브라질 삼바는 원래 시끄럽고 공동체적인 음악이다 — 퍼커션이 쿵쾅거리고, 군중이 함께 움직이는 카니발의 음악. 질베르투는 이 에너지를 혼자서, 기타 하나로, 작은 목소리로 재현했다. 소리를 키우는 대신 밀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그의 기타 주법은 ‘바치다(batida)’라고 불린다 — 삼바 퍼커션의 복잡한 리듬을 오른손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이 동시에 표현하는 방식. 오른손이 리듬을 치는 동안 왼손은 조빔이 쓴 복잡한 코드를 짚는다. 그 위로 목소리가 얹힌다 — 마이크에 바짝 다가가, 마치 귀에 속삭이듯. 이 조합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이것이 삼바인가? 재즈인가? 새로운 무언가인가? 세 번째였다.
“완벽한 음 하나가 불완전한 연주 전체보다 낫다. 나는 평생 그 하나의 음을 찾고 있다.”
— 주앙 질베르투
질베르투의 완벽주의는 전설적이다. 그는 한 소절의 리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를 반복했다. 목욕탕 음향이 좋다며 욕조에 앉아 연습했다는 일화가 있다. 함께 작업한 뮤지션들은 그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토로했지만, 그 지나침이 보사노바의 질감을 만들었다. 완벽하게 제어된 소리만이 그 섬세한 공간감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년의 질베르투는 더욱 은둔했다. 리우 이파네마의 아파트에서 거의 나오지 않으며 공연을 극히 드물게 가졌다. 그 희귀함이 도리어 그를 신화로 만들었다. 2008년 도쿄 공연에서 그는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수천 명을 침묵시켰다. 무대 위에서 그는 언제나 홀로였고, 그 고독이 음악이 되었다.
시인 외교관의 사랑 —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는 보사노바 세 사람 중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음악가가 아니었다. 브라질 외무부 관료였고, 영화 비평가였고, 가톨릭 시인이었다 — 그러다 어느 순간 보사노바의 가장 아름다운 시를 썼다. 직업이 시인이 아닌 사람이 가장 시적인 가사를 남기는 아이러니는, 그가 삶 전체를 하나의 시처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홉 번 결혼했다. 이 사실은 스캔들이 아니라 그의 철학이다. 모라이스가 사랑에 대해 쓴 시들은 낭만적인 상투어와 거리가 멀다 — 그것들은 사랑의 무상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껴안는다. 그의 대표작 “Receita de Mulher(여자의 레시피)”에서 그는 “아름다운 것은 무한하지 않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쓴다. 그 유한함이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삶은 예술이다. 삶을 사랑하는 것이 예술이다. 그리고 사랑 자체가 삶이다. 이 세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모라이스와 조빔의 협업이 낳은 “Garota de Ipanema(이파네마의 소녀)”는 단순한 팝송이 아니다. 두 사람은 리우의 한 카페에서 매일 아침 지나치는 실제 소녀 — 헬로이자 엔리케타 핀호 — 를 보며 이 곡을 만들었다. 모라이스는 그 짧은 찰나, 지나가는 아름다움이 만드는 슬픔을 가사에 담았다. 소녀는 해변을 향해 걸어가고, 그녀를 보는 사람은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그녀는 우리를 보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비극적이지 않다. 다만 아름다움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고요한 서늘함이 있을 뿐이다.
모라이스는 또한 1959년 뮤지컬 “Orfeu da Conceição(코파카바나의 오르페우)”의 원작자였다. 이 작품은 카니발 리우를 배경으로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를 재해석한 것으로, 마르셀 카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 사람이 음악과 시와 극작과 외교를 오가며 모두를 해냈다는 것이 믿기 어렵지만, 모라이스에게 이것들은 분리된 활동이 아니었다. 모두 사랑을 표현하는 서로 다른 언어였을 뿐이다.
세 선율이 만나는 곳
조빔
색채
클래식 화성과 브라질 리듬이 만든 독창적 색깔. 그의 화음은 열대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품는다.
질베르투
절제
소리를 줄일수록 깊어지는 역설. 그의 속삭임은 가장 낮은 볼륨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가졌다.
모라이스
순간
지나가는 아름다움의 목격자. 그의 시는 영원을 말하지 않고 찰나를 영원처럼 다루었다.
보사노바는 협업으로 태어났다. 조빔 혼자였다면 아름다운 작곡가로 남았을 것이다. 질베르투 혼자였다면 기이한 기타리스트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모라이스 혼자였다면 훌륭한 시인으로 잊혔을 것이다. 세 사람이 만나 각자의 결핍을 서로의 강점으로 채웠을 때 비로소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다. 조빔의 화성이 토대가 되고, 질베르투의 주법과 목소리가 질감을 만들었으며, 모라이스의 시가 영혼을 불어넣었다.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의 성격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조빔은 사교적이고 유머 감각이 넘쳤다 — 그의 인터뷰는 재치 있는 발언으로 가득하다. 질베르투는 내향적이고 고독을 즐겼으며, 사람들과 오래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모라이스는 정반대로 파티를 사랑하고 사람을 끌어모았으며, 삶 자체를 축제처럼 살았다. 이 세 가지 기질이 하나의 음악 안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그들에게 유일하게 공통된 언어였기 때문이다.
보사노바는 1950년대 말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의 중산층 아파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전 세계에 퍼졌을까? 답은 아마 이것이다 — 보사노바는 삶의 달콤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방법을 알았다. 브라질 포르투갈어로 ‘사우다지(saudade)’라는 단어가 있다. 그리움, 향수,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의미하는 번역 불가능한 감정. 보사노바는 그 감정의 음악적 형식이다. 조빔이 화음으로, 질베르투가 리듬으로, 모라이스가 언어로 그 감정을 포착했다.
오늘날 보사노바는 카페의 배경음악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 음악이 가진 운명이자 저주다 — 너무 편안해서 주목받지 못하는 음악. 그러나 잠시 멈추어 귀를 기울이면, 그 안에 세 사람의 생애가 녹아 있다. 조빔이 찾아 헤맨 완벽한 화음, 질베르투가 욕조에서 연습한 바치다 리듬, 모라이스가 카페 창가에서 지나치는 소녀를 보며 느낀 찰나의 서늘함. 리우의 바람이 된 그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