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할리우드 스튜디오 파라마운트의 시사실에서 어느 제작자가 영화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크린 위에는 보험 설계사가 자기 손으로 공들여 계획한 살인의 전말을 독백하고 있었다. 죽음은 처음부터 예고되었다. 범행도, 이유도, 결말도 — 모두 첫 장면에서 드러났다. 그런데도 관객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빌리 와일더의 《이중 배상》이었다. 필름 누아르는 그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필름 누아르(Film Noir). 프랑스 비평가들이 1940년대 미국 영화를 유럽에서 처음 접하고 붙인 이름이다. ‘검은 영화’. 이 영화들은 전쟁 후 세계를 새로 배운 시선으로 봤다. 선량한 사람은 드물고, 좋은 의도는 배신당하며, 욕망은 언제나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 독일 표현주의의 날카로운 그림자와 하드보일드 소설의 냉소적 문체가 만나 탄생한 이 장르는, 유럽에서 망명한 감독들의 손에서 가장 빛났다. 와일더는 빈에서, 랭은 오스트리아에서, 허스턴은 미국 태생이었지만 유럽의 감수성으로 이들과 동행했다. 세 사람은 어둠의 문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썼다.
세 감독의 궤적
빌리 와일더 (1906–2002) · 오스트리아령 갈리치아 출생 · 《이중 배상》(1944), 《선셋 대로》(1950) — 아카데미 감독상 2회
존 휴스턴 (1906–1987) · 미국 네바다 출생 · 《말타의 매》(1941),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1948) — 감독·각본 동시 수상
프리츠 랭 (1890–1976) · 오스트리아 빈 출생 · 《M》(1931), 《거대한 열기》(1953) — 나치 독일 탈출 후 누아르의 선구자
와일더: 냉소를 웃음으로 포장한 망명자
1906–2002
빌리 와일더의 본명은 사무엘 빌더였다. 190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빈에서 성장했고, 베를린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영화 시나리오로 전향했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던 날, 그는 파리행 기차를 탔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베를린에 남았다가 나중에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났다. 와일더는 이 사실을 평생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영화들이 말했다. 인간이란 얼마나 쉽게 악에 공모하는가, 얼마나 쉽게 자신을 속이는가.
《이중 배상》(1944)은 보험 설계사 월터 네프(프레드 맥머리)가 팜므 파탈 필리스 딕트리히슨(바버라 스탠윅)의 유혹에 빠져 남편을 살해하는 이야기다. 완전 범죄처럼 보였던 계획은 와일더의 손 안에서 처음부터 균열을 드러낸다. 영화는 네프가 이미 상처를 입은 채 사무실 독백 기계에 자백을 녹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누가 범인인지 우리는 안다. 그런데도 보게 된다. 와일더는 서스펜스를 미스터리에서 꺼내 인간 심리 속으로 옮겨놓았다.
“좋은 영화는 세 가지 장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쁜 장면은 없어야 한다.”
— 빌리 와일더
《선셋 대로》(1950)는 더 대담했다. 이번에도 화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수영장에 얼굴을 박고 떠 있는 남자가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몰락한 무성영화 스타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와 그 집에 얹혀사는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자체를 누아르의 배경으로 삼는다. 영광과 망각, 환상과 잔인한 현실 — 와일더는 자신이 몸담은 산업을 그 어떤 감독보다 냉혹하게 해부했다. 그것도 그 산업의 돈으로.
휴스턴: 욕망의 여행을 따라간 모험가
1906–1987
존 휴스턴은 누아르 감독들 중 가장 육체적인 사람이었다. 권투 선수, 기병대 장교, 화가, 전쟁 다큐멘터리스트 — 그는 스튜디오 안보다 세계 밖에서 더 자주 살았다. 아버지 월터 휴스턴은 배우였고, 딸 앤젤리카 휴스턴은 배우가 되었다.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1948)에서 존은 감독·각본상을, 아버지 월터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부자(父子) 동반 수상이었다.
데뷔작 《말타의 매》(1941)는 필름 누아르의 기원으로 꼽힌다. 대실 해밋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탐정 샘 스페이드는 이후 모든 하드보일드 주인공의 원형이 되었다. 그는 의리도 있고 냉소도 있으며, 도덕적이되 완벽하지 않다.휴스턴의 남자들은 무언가를 찾아 떠나지만,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 잃는다. 황금을 쫓던 프레드 도브스는 모래바람에 황금 가루를 날려버리고, 말타의 매를 손에 넣어도 그것은 가짜다. 욕망의 대상은 언제나 비어 있다.
《아스팔트 정글》(1950)은 강도단이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완전 범죄는 없다. 각자의 약점이 — 나이든 말에 대한 향수, 젊은 정부에 대한 집착, 작은 부상 — 연쇄적으로 계획을 무너뜨린다. 휴스턴은 범죄자들을 악당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가진 것이 없는 인간들이다. 관객은 알면서도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패배를 함께 맞는다.
랭: 운명의 덫을 설계한 건축가
1890–1976
프리츠 랭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것은 1933년의 일이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가 랭을 불렀다. 그는 랭의 영화 《니벨룽겐》과 《메트로폴리스》에 감동받았고, 랭을 독일 영화의 수장으로 임명하고 싶다고 했다. 랭은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가, 그날 저녁 파리행 기차를 탔다.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랭은 괴벨스가 말하는 내내 자신이 창밖으로 도망칠 방법을 계산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날카롭고 냉정한 계산 — 그것이 랭의 영화 세계였다.
《M》(1931)은 연쇄 살인마를 추격하는 이야기이지만, 랭의 관심은 범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었다. 경찰과 도시 암흑가가 동시에 살인마를 쫓는다. 결말부에서 범죄자들이 세운 법정에서 살인마(피터 로레)는 울며 고백한다 —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고. 랭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충동의 포로다.운명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새겨진 것이다.
“나는 항상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왔다. 그러나 더 자주 발견한 것은 빛 속에 숨어 있는 어둠이었다.”
— 프리츠 랭
미국으로 건너온 랭은 독일 시절의 압도적인 세트 대신 작은 예산으로 더 응집된 심리를 파고들었다. 《분노》(1936)에서는 폭도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여겨진 남자가 복수로 자신을 타락시키는 과정을 그렸다. 《거대한 열기》(1953)에서는 경찰이 부패한 시스템에 맞서다 법 바깥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냉정하게 따라갔다. 랭에게 법과 무법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정의를 얻으려면 그 과정에서 자신도 오염된다.
세 그림자, 세 가지 어둠
같은 장르 안에서도 세 사람의 어둠은 성격이 달랐다. 와일더의 어둠은 말하고, 휴스턴의 어둠은 움직이며, 랭의 어둠은 짓누른다.
“필름 누아르는 도덕 극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덫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록하는 장르다.”
— 폴 슈레이더, 「필름 누아르에 관한 노트」(1972)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필름 누아르는 1940년대에 피어나 1950년대 후반에 일단락되었다. 컬러 영화의 보급, 헤이스 코드의 강화, 텔레비전의 등장 — 여러 조건이 겹치며 고전 누아르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1970년대 ‘네오 누아르’로 귀환한 이 장르는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74)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1990년대 쿠엔틴 타란티노는 누아르의 언어를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은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누아르의 핵심 —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시스템은 실패한다 — 을 정확히 재현했다.
세 감독은 서로 다른 이유로 어둠 속을 들여다봤다. 와일더는 망명자로서 인간의 잔인함을 웃음으로 삼켰다. 휴스턴은 모험가로서 욕망의 헛됨을 몸으로 확인했다. 랭은 생존자로서 시스템의 폭력을 기하학적 구도에 새겼다. 그들이 공유한 것은 하나였다 — 세계가 공정하다는 환상을 거부하는 것. 전쟁 후 시대의 관객들은 그 환상이 이미 재로 변했음을 알았다. 세 감독의 영화는 그 재 위에 세워진 가장 정직한 건축물이었다.
베네치안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드는 빛줄기. 담배 연기. 빗소리. 모자 챙을 내린 남자의 얼굴. 이 이미지들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어둠’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떠오른다. 와일더, 휴스턴, 랭이 우리 상상력 속에 심어놓은 그림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