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봄, 칸 영화제에서 한 무명 감독의 데뷔작이 감독상을 받았다. 파리 뒷골목의 비행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흑백 영화였다. 촬영 장비는 빌린 것이었고, 조명은 거리의 햇빛으로 대신했으며, 대본은 매일 아침 현장에서 썼다.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였다.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은 그렇게 해안을 넘쳤다.
누벨 바그는 하나의 운동이라기보다 하나의 태도였다. 1950년대 말 프랑스의 젊은 영화 비평가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과 자국의 ‘고품격 영화(qualité française)’를 함께 공격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감독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영화였다. 스크린은 화가의 캔버스처럼 개인의 비전을 드러내는 공간이어야 했다. 이 ‘작가주의(politique des auteurs)’를 기치로 내건 비평가들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트뤼포, 고다르, 샤브롤 — 그들은 비평의 언어를 영화 자체로 번역했다.
세 감독의 궤적
프랑수아 트뤼포 (1932–1984) · 파리 출생 · 《400번의 구타》(1959), 《쥘과 짐》(1962) —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장뤽 고다르 (1930–2022) · 파리 출생 · 《네 멋대로 해라》(1960), 《경멸》(1963) — 영화 형식의 급진적 해체
클로드 샤브롤 (1930–2010) · 파리 출생 · 《잘생긴 세르주》(1958), 《사촌》(1959) — 누벨 바그의 첫 장편을 만든 선구자
트뤼포: 비평가에서 아이로 돌아간 감독
1932–1984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년은 영화가 아니라면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1932년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사생아였고, 어머니는 그를 조부모에게 맡겼다. 조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지만, 집은 냉담했다. 트뤼포는 영화관을 피난처 삼아 자랐다. 무단결석과 절도로 소년원에 가기도 했다. 그를 구한 것은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이었다. 바쟁은 소년원에서 나온 트뤼포를 거두어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트뤼포는 고다르, 샤브롤, 에릭 로메르를 만났다.
트뤼포는 영화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 중 하나였다. 1954년 발표한 글 「프랑스 영화의 특정 경향에 대하여」는 당시 프랑스 대작들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문학 원작을 그저 옮기는 데 급급한 영화들, 관객을 가르치려 드는 대사들, 감독의 개성이 사라진 장인적 솜씨 — 그는 이 모든 것을 ‘위기의 전통’이라 불렀다. 비평으로 싸운 뒤, 그는 스스로 카메라를 들었다.
“나는 영화가 삶보다 더 조화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삶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한다.”
—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1959)는 자전적이었다. 주인공 앙투안 두아넬은 사랑받지 못한 아이, 학교와 가정에서 탈출하려는 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 앙투안이 바다를 향해 달리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멈추는 장면 — 은 영화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끝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눈빛에는 절망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저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한 아이가 있을 뿐이다. 트뤼포는 이후 앙투안을 다섯 편의 영화에 걸쳐 성인이 될 때까지 따라갔다 — 영화사상 유례없는 ‘삶 전체의 연작’이었다.
고다르: 영화 언어를 분해한 해체주의자
1930–2022
장뤽 고다르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랑스계 부르주아 가정에 태어났다. 소르본에서 인류학을 공부했지만 영화관 출입이 더 잦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그의 진짜 대학이었다. 하루에 서너 편씩 영화를 보며 헨리 포드, 로베르토 로셀리니, 니콜라스 레이의 작품을 분석했다. 그가 《카이에 뒤 시네마》에 쓴 비평들은 당대 가장 자극적인 영화 담론이었다.
1960년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는 모든 관습을 동시에 깼다. 헐리우드 갱스터 영화의 외피를 빌렸지만, 내부는 전혀 달랐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파리 거리를 돌아다니며 찍었고,점프 컷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영화 편집의 ‘금기’였던 점프 컷 — 같은 앵글에서 시간을 건너뛰는 편집 — 은 당시 편집자들이 실수를 감추려 쓰던 기법이었다. 고다르는 이것을 전면에 배치했다. 리듬이 깨지고, 서사가 흔들리고, 관객은 영화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영화는 시작, 중간, 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순서일 필요는 없다.”
— 장뤽 고다르
고다르의 영화는 갈수록 정치적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 그는 상업적 배급을 완전히 거부하고 급진 좌파 영화 집단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결성했다. 1980년대에는 비디오와 필름을 혼합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마지막 작품까지 고다르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묻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22년 그는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선택해 생을 마감했다. 91세였다.
샤브롤: 부르주아를 해부한 첫 번째 총탄
1930–2010
클로드 샤브롤은 누벨 바그에서 가장 먼저 장편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고다르와 트뤼포가 신화적 존재로 부상하는 동안, 그는 조용히 선구자로서의 몫을 차지했다. 1958년 《잘생긴 세르주(Le Beau Serge)》는 누벨 바그의 진정한 첫 장편으로 꼽힌다. 샤브롤은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이 영화를 자비 제작했다. 알프스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서 촬영한 흑백 영화였다. 파리로 유학을 갔다 돌아온 청년과 고향에 남아 술에 빠진 친구의 이야기 — 단순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샤브롤이 평생 천착할 주제가 이미 거기 있었다.
샤브롤의 주제는 부르주아의 위선이었다. 히치콕의 스릴러 방법론을 빌려, 그는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범죄와 욕망을 해부했다. 《도살자》(1970), 《의식》(1995) 등 쉰 편이 넘는 작품들에서 살인은 단순한 충격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계급, 억압, 체면 유지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였다. 샤브롤의 카메라는 냉담하고 건조하다. 그는 관객이 악인에게 동정하거나 피해자에게 공감하기를 거부한다. 모두가 조금씩 공모자이고,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라는 메시지였다.
그들이 부순 열 가지 규칙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는 불문율이 있었다. 스크린은 완전히 다른 세계여야 하고, 관객은 그 세계에 빠져들어야 하며, 기술적 실수는 감춰야 한다. 카메라는 ‘투명’해야 한다 — 카메라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관객이 느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누벨 바그는 이 모든 전제를 뒤집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나에게 이 둘은 같은 행위다.”
— 장뤽 고다르
카메라의 자유, 그 이후
누벨 바그는 1960년대 중반이 되면서 하나의 ‘운동’으로서의 응집력을 잃었다. 감독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고다르는 정치 영화로 갔고, 트뤼포는 점차 고전적 서사에 가까워졌으며, 샤브롤은 장르 영화 속에서 비판을 지속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만든 언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트뤼포를 스승이라 불렀고, 우디 앨런은 고다르의 뉴욕 버전을 꿈꿨다. 스탠리 큐브릭,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왕가위 — 현대 영화의 거장들 중 누벨 바그의 세례를 받지 않은 이는 드물다.
세 사람이 공유한 것은 하나였다. 영화는 감독의 것이어야 한다.제작자의 것도, 스타의 것도, 장르 관습의 것도 아닌, 한 개인의 목소리가 담긴 매체. 이 생각은 상식처럼 들리지만,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감독은 공장의 숙련 기술자에 가까웠다. 누벨 바그는 감독을 예술가로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스필버그 영화’, ‘봉준호 영화’, ‘홍상수 영화’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쓴다.
트뤼포는 1984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향년 52세였다. 고다르는 2022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샤브롤은 2010년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세 사람은 어느 인터뷰에서도 자신들이 ‘운동’을 이끌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라 했다. 아마도 그것이 혁명의 가장 완벽한 형태일 것이다 — 스스로 혁명인 줄 모르고 저지른 혁명.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도시의 작은 영화관에서 누군가가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자연광 아래서, 즉흥 대사로 영화를 찍고 있다. 그들은 아마 누벨 바그를 흉내 내는 게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저 1959년의 트뤼포처럼,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꺼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