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봄, 파리. 알베르 카뮈는 철학 잡지 《현대》의 서평 한 편을 펼쳐 읽다가 손을 멈췄다. 자신의 새 책 『반항하는 인간』을 가리켜 “당신의 도덕주의는 역사를 외면하는 이상주의”라고 쓴 글이었다. 서평자는 프랑시스 장송이었지만, 그 뒤에는 편집장 장폴 사르트르가 있었다. 지하 레지스탕스 신문을 함께 만들고, 생제르맹데프레 카페에서 새벽까지 철학을 논했던 그 친구였다.
두 사람의 우정은 1943년, 한 연극 초연의 뒤풀이 파티에서 시작되었다. 사르트르는 이미 『존재와 무』를 펴낸 실존주의 철학자였고, 카뮈는 『이방인』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알제리 출신의 작가였다. 9년간의 우정은 서한 몇 통으로 공개적 결별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결별은 단순한 감정의 파국이 아니었다. 20세기 인류가 붙잡고 씨름한 질문 — 세계는 무의미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대답이 충돌한 순간이었다.
두 철학자의 궤적
장폴 사르트르 (1905–1980) · 파리 출생 · 실존주의 철학자, 『존재와 무』 · 『구토』 저자 — 노벨문학상 거부 (1964)
알베르 카뮈 (1913–1960) · 알제리 몽도비 출생 · 부조리 철학자, 『이방인』 · 『시지프 신화』 저자 — 노벨문학상 수상 (1957)
사르트르: 자유라는 형벌
1905–1980
장폴 사르트르는 190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두 살에 잃고 어머니와 외조부 아래서 자랐다. 외조부는 알자스 출신의 지식인으로, 어린 사르트르에게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물려주었다. 사르트르는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교원임용시험 아그레가시옹에서 1위를 했다. 그 해 동급생 시몬 드 보부아르가 2위였다.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은 하나의 도발적 명제에 담겨 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의자는 만들어지기 전에 설계도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먼저 던져지듯 세계에 존재하고, 그다음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신도, 자연도, 역사도 우리의 본질을 미리 규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하며, 그 선택이 곧 우리 자신이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일단 세계에 던져진 이상, 그가 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 장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1946)
자유는 사르트르에게 해방이 아니라 불안의 원천이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서 도망칠 수 없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2차 세계대전과 레지스탕스 활동을 거치면서 사르트르는 이 개인적 자유를 역사적 행동과 연결했다. 마르크시즘이야말로 역사의 지평이라고 믿었고, 소비에트 체제의 범죄를 알면서도 부르주아 반공주의와 손잡기를 거부했다. 개인의 자유는 집단적 해방을 향해 실천될 때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카뮈: 시지프스는 행복해야 한다
1913–1960
알베르 카뮈는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카뮈가 태어난 해 1차 세계대전 전선에서 사망했다. 어머니는 청각 장애가 있었고 글을 거의 읽지 못했다. 카뮈는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고, 결핵으로 대학 철학과 졸업 자격시험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파리 지식인들처럼 서재에서 철학을 얻지 않았다. 알제리의 눈부신 햇빛과 바다, 그리고 가난과 죽음의 감촉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았다.
카뮈 철학의 출발점은 ‘부조리’다. 인간은 의미를 갈망한다. 그러나 세계는 침묵한다. 이 간극, 이 불일치가 부조리다. 카뮈는 세 가지 반응을 분류했다. 육체적 자살 — 삶 자체를 포기하는 것. 철학적 자살 —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귀의하여 부조리를 회피하는 것. 그리고 반항 —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삶을 껴안는 것. 카뮈가 선택한 것은 마지막이었다.
“시지프스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나는 본다. 그의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행복해야 한다고 상상해야 한다.”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1942)
신들은 시지프스에게 바위를 산 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내렸다. 바위는 정상에 닿는 순간 다시 굴러 내려온다. 그러나 카뮈가 보기에 시지프스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안다. 그 앎이 그를 바위보다 높은 곳에 세운다. 부조리를 부정하거나 초월하려 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찾는 것 — 이것이 카뮈의 반항이었다.
1952년: 서한으로 끝난 우정
두 사람의 철학적 거리는 1951년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출간 이전까지는 우정으로 봉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카뮈는 혁명적 폭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공산주의 혁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의 진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인간을 희생시키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결국 테러리즘과 다를 바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면, 나는 어떤 목적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혁명이 인간을 죽일 때, 그것은 혁명이기를 멈춘다.”
— 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인간』 (1951)
사르트르의 잡지 《현대》는 혹독한 서평을 실었다. 카뮈는 사르트르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고, 그 편지는 “편집장 선생”으로 시작했다 — 의도적인 거리두기였다. 사르트르의 답장은 더 냉담했다. “당신의 우정이 소중했지만, 나는 당신보다 진실을 더 사랑한다.” 카뮈에게 그 문장은 찌르는 것이었다. 둘의 우정은 그렇게 끝났다.
논쟁의 핵심은 역사였다. 사르트르는 역사에 방향이 있다고 믿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폭력은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카뮈는 반대했다. 역사의 이름 아래 개인을 수단으로 삼는 순간, 우리는 이미 우리가 싸운 폭정을 재현하고 있다고. 두 사람은 모두 레지스탕스 출신이었고, 나치즘에 함께 맞섰다. 그러나 자유로 가는 길에 대해서는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사르트르의 대답
-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우리는 스스로를 만든다
- 자유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 마르크시즘 — 역사적 해방의 지평
- 개인의 자유는 집단적 실천으로 완성된다
- 역사의 맥락 안에서 폭력을 이해할 수 있다
카뮈의 대답
- 부조리 — 의미 없는 세계와 맞서는 반항
- 자유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개인 안에 있다
- 지중해적 감수성 — 햇빛, 바다, 현재
- 혁명보다 반항, 이데올로기보다 인간
- 어떤 목적도 인간을 수단으로 만들 수 없다
침묵과 재평가
카뮈는 결별 이후에도 글을 썼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수상 연설에서 “나는 어머니와 진실 사이에서 어머니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 알제리 독립 문제에 대한 자신의 모호한 입장을 변호한 문장으로도, 그의 철학 전체를 요약한 문장으로도 읽힌다. 1960년 1월 4일, 그는 파리 근교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향년 46세였다. 가방 안에는 미완성 자전 소설 『최초의 인간』이 들어 있었다. 알제리의 가난한 소년 시절을 담은 원고였다.
사르트르는 부음을 듣고 짧은 추도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다투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같은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 자유롭고 정직한 세계를.” 그 후 사르트르는 카뮈에 대한 평가를 조심스럽게 수정했다. 자신이 너무 가혹했음을, 카뮈의 경고가 선견지명이었음을 서서히 인정했다. 소비에트 굴라크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역사는 카뮈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사람은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의미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르트르는 역사와 행동으로 달려갔고, 카뮈는 반항과 현재 속에 머물렀다. 어느 대답이 옳은지는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세계는 여전히 침묵하고, 우리는 여전히 바위를 밀어 올린다 — 사르트르처럼 해방을 꿈꾸면서, 혹은 카뮈처럼 그 행위 자체 안에서 의미를 찾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