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처음 들어선 사람이 큐비즘 작품 앞에서 멈추는 이유는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당혹감 때문이다. 기타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형태들, 동시에 여러 각도에서 본 것 같은 파편화된 얼굴, 하나의 화면 위에서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평면들. 이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1907년 파리, 세 사람이 500년 된 서양 회화의 눈을 뽑아내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조립하기 시작했다.
큐비즘은 인상주의처럼 빛을 포착하려 하지 않았고, 상징주의처럼 내면을 표상하려 하지도 않았다. 큐비즘의 질문은 더 근본적이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르네상스 이래 서양 회화는 단일한 시점을 전제로 했다. 화가는 한 지점에 서서 세계를 바라보고, 그 단면을 캔버스에 옮겼다. 큐비스트들은 이 전제가 거짓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을 알아간다. 앞도 보고, 옆도 보고, 기억 속의 형태와 지금 눈앞의 형태를 겹쳐놓는다. 큐비즘은 그 전체를 하나의 화면에 담으려 했다.
세 화가의 궤적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 스페인 말라가 출생 · 《아비뇽의 처녀들》(1907), 《우는 여인》(1937) — 큐비즘의 발화점
조르주 브라크 (1882–1963) · 프랑스 아르장퇴유 출생 · 《에스타크의 집들》(1908), 《바이올린과 피처》(1910) — 분석적 큐비즘의 공동 발명자
후안 그리스 (1887–1927) · 스페인 마드리드 출생 · 《피카소의 초상》(1912), 《기타》(1918) — 종합적 큐비즘의 완성자
피카소: 파괴자이자 건설자
1881–1973
1906년 가을, 파블로 피카소는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누드 여성을 그린 이 대형 캔버스는 그 해에 완성되었지만, 피카소는 10년 넘게 공개하지 않았다. 친구들조차 충격을 받았다. 조르주 브라크는 처음 보고 “당신은 우리에게 석유를 마시게 하고 불을 삼키게 하려는 것이냐”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화면 왼쪽의 두 여인은 이베리아 조각의 영향이 보이고, 오른쪽 두 여인의 얼굴은 아프리카 가면처럼 각지고 분열되어 있다. 하나의 그림 안에 서로 다른 시각 언어가 충돌하고 있었다.
피카소는 말라가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했다. 미술 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를 때 한 달 걸릴 과제를 하루 만에 완성했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 교사였고, 아들의 재능이 자신을 넘어섰음을 인정하며 붓을 꺾었다고 전해진다.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가난한 ‘세탁선(Le Bateau-Lavoir)’이라 불린 몽마르트르의 낡은 건물에 살며 작업했다. 그곳에서 브라크를 만났고, 둘은 1908년부터 거의 매일 서로의 스튜디오를 오가며 그림을 비교하고 논쟁했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
— 파블로 피카소
이 말은 큐비즘의 선언문과 같다. 눈에 보이는 한 순간의 단면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 — 앞, 뒤, 옆, 시간의 흐름, 기억 — 을 하나의 화면에 펼치는 것. 피카소는 평생 큐비즘에 머물지 않았다. 고전주의로 돌아가기도 했고, 표현주의적 작품도 남겼다. 그러나 《아비뇽의 처녀들》이 열어젖힌 문을 그는 결코 닫지 않았다. 그의 예술은 끊임없이 파괴하고 재건하는 과정이었다. 92세까지 그린 그의 작품들 중 단 하나도 ‘안전한’ 작품은 없다.
브라크: 손으로 생각한 장인
1882–1963
조르주 브라크의 출발은 피카소와 달랐다. 그는 미술을 배우기 전 집 장식 화가(décorateur)로 도제 훈련을 받았다. 붓을 잡는 법, 재료를 다루는 법, 표면을 처리하는 기술 — 브라크에게 그림은 손이 먼저였다. 이 장인적 감각은 그의 큐비즘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피카소의 화면이 때로 폭발적이고 도발적이라면, 브라크의 화면은 차분하고 촉각적이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오래된 나무나 악기의 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1908년 브라크는 프로방스의 에스타크에서 풍경화 연작을 그렸다. 비평가 루이 복셀은 이 그림들을 “작은 정육면체(petits cubes)로 이루어진” 그림이라고 조롱했다 — 그 조롱에서 ‘큐비즘 (Cubisme)’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브라크와 피카소는 1909년부터 1914년까지 하나의 언어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이 시기 두 사람의 그림은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유사했다. 훗날 두 사람은 서로를 ‘월버’와 ‘오빌’이라 불렀다 — 라이트 형제처럼 함께 하늘을 날았다는 뜻이었다.
1912년, 브라크는 캔버스에 신문지와 벽지 조각을 붙이는 실험을 했다.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라 불린 이 기법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었다. 그림 속에 실제 사물의 조각이 등장함으로써,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캔버스 위에서 물성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재현(representation)과 실재(reality)의 경계가 흐려졌다. 피카소는 이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콜라주를 확장했고, 이후 현대 미술의 중요한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후안 그리스: 수학으로 그린 시
1887–1927
후안 그리스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1906년 파리로 왔다. 세탁선에서 피카소와 같은 건물에 살았으며, 처음에는 삽화가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회화를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초반이었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큐비즘을 발명하는 동안, 그리스는 옆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단순히 따라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 선구자가 도달하지 못한 지점으로 큐비즘을 밀고 나갔다.
그리스는 스스로의 방법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잔은 병에서 원통을 만들었지만, 나는 원통에서 병을 만든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실제 대상을 분해하여 추상으로 나아갔다면, 그리스는 추상적인 구조를 먼저 구성하고 그 안에 구체적 형상을 채워 넣었다. 더 수학적이고, 더 건축적이었다. 그의 화면은 혼돈이 아니라 엄밀한 질서를 갖는다. 색채는 선명하고, 면과 면의 관계는 논리적이며, 전체가 하나의 체계처럼 작동한다.
“나는 추상에서 출발하여 구체에 도달하려 한다. 세잔과 방향이 반대인 것이다.”
— 후안 그리스
그리스는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결핵이었다.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것은 ‘종합적 큐비즘(Synthetic Cubism)’이라 불리는 성숙한 단계였다. 단색에 가까운 분석적 큐비즘의 화면과 달리, 종합적 큐비즘의 화면은 밝고 선명한 색채로 이루어진다. 형태는 여전히 해체되어 있지만, 전체적 인상은 오히려 명료하다. 그것은 혼란을 통과하여 도달한 명료함이었다. 피카소는 훗날 그리스를 “위대한 화가였다”고 회고했다.
같은 질문, 세 가지 답
세 사람은 모두 대상을 복수의 시점에서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각자의 방법은 달랐다. 피카소는 직관과 충동으로 캔버스를 공격했다. 브라크는 장인의 손으로 화면을 쌓았다. 그리스는 수학자의 머리로 화면을 설계했다.
피카소
파괴와 본능
대상을 산산조각 낸 뒤 직관으로 재조합한다. 규칙보다 에너지가 먼저다.
브라크
촉각과 구성
장인의 손으로 화면의 질감을 쌓는다. 종이와 신문, 물질 자체가 그림이 된다.
후안 그리스
논리와 시
추상 구조를 먼저 짜고 형상을 채워 넣는다. 가장 명료한 큐비즘.
“큐비즘은 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화가는 자신이 아는 것 전체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관점에서 동시에 대상을 바라봐야 한다.”
— 조르주 브라크
파편이 된 세계, 재조립된 시각
큐비즘이 미술에서 멈추었다면 미술사의 한 챕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큐비즘의 파급은 미술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건축에서는 르 코르뷔지에가 큐비즘 회화와 비슷한 기하학적 명료함을 공간에 적용했다. 시에서는 기욤 아폴리네르가 칼리그람으로 단어를 파편화했다. 음악에서는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에서 리듬을 해체했다.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시기 군용 차량들이 큐비즘 패턴의 위장색 (dazzle camouflage)을 사용하기도 했다 — 적의 눈이 형태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분열시키는 방법으로.
세 사람의 방법론은 20세기 내내 변형되고 반복되었다. 미래주의, 구성주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 이 모든 흐름의 뿌리 어딘가에 큐비즘이 있다. 대상을 파편화하여 재조립하는 방식은 디자인, 광고, 영화, 그래픽 아트의 언어가 되었다. 우리가 지금 여러 창을 동시에 열고 화면을 분할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따져보면 큐비즘이 예고한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피카소는 1973년 91세로 타계했다. 브라크는 1963년 81세에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스는 1927년 고작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세 사람이 함께 일한 실제 시간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에, 그들은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영구적으로 바꾸었다.
미술관에서 큐비즘 그림 앞에 다시 서보라. 처음의 당혹감이 가신 자리에는 다른 무언가가 남는다. 그림이 단 하나의 진실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사실, 보는 위치가 달라지면 세계도 달라진다는 사실 — 그것은 그림 이야기가 아니라 삶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