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은 번영의 시대처럼 보였다. 전후 경제는 호황이었고, 교외에는 새집이 들어섰으며, TV에서는 행복한 가족들이 웃었다. 하지만 세 젊은이는 이 풍경 뒤편에서 다른 무언가를 보았다. 순응의 압력, 물질주의의 공허함, 억압된 욕망. 그들은 자동차에 올라타 달렸고, 마약을 했으며, 섹스와 재즈와 시로 질식할 것 같은 시대를 숨 쉬게 했다. 문학은 그들에게 반란이었고, 동시에 구원이었다.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이라는 이름은 케루악이 처음 썼다. ‘비트(beat)’는 지쳐버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재즈의 박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긴즈버그가 ‘비어티튜드(beatitude)’ — 행복, 축복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더했다. 패배한 자들의 문학이기도 했고, 새로운 각성을 향한 문학이기도 했다. 이 이중성이 비트 문학의 핵심이다.
세 작가의 궤적
잭 케루악 (1922–1969) · 매사추세츠 로웰 출생 · 『길 위에서』(1957), 『지하생활자들』(1958) — 비트의 목소리
앨런 긴즈버그 (1926–1997) · 뉴저지 뉴어크 출생 · 「울부짖음」(1956), 『카디쉬』(1961) — 비트의 예언자
윌리엄 S. 버로스 (1914–1997) ·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출생 · 『정키』(1953), 『네이키드 런치』(1959) — 비트의 파괴자
케루악: 달리는 타자기
1922–1969
잭 케루악은 매사추세츠 로웰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에서는 프랑스어를 쓰는 노동자 계층 소년이 컬럼비아 대학에 장학금으로 입학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축구 선수로 기대를 모으던 중 부상을 당해 학교를 떠났고, 이후 해군에 입대했다가 정신 불안정 판정을 받고 제대했다. ‘실패’처럼 보이는 이 이력들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
1951년 4월, 케루악은 뉴욕 아파트에서 120피트짜리 텔레타이프 용지 롤을 타자기에 끼웠다. 커피와 벤제드린으로 버티며 3주 만에 『길 위에서』 초고를 완성했다. 용지를 이어 붙인 것은 타이핑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였다. 멈추면 흐름이 끊긴다고 믿었다. 그는 이것을 ‘즉흥 산문 (spontaneous prose)’이라 불렀다. 재즈 뮤지션이 즉흥 연주를 하듯, 생각이 흐르는 대로 검열 없이 써내려 가는 방식이었다.
“유일하게 나를 흥미롭게 하는 사람들은 미쳐 있는 자들이다. 살기 위해 미쳐 있고, 이야기하기 위해 미쳐 있고, 구원받기 위해 미쳐 있으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원하는 자들. 하품 같은 것은 절대 모르는 자들.”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출판사들은 6년 동안 원고를 거절했다. 형식이 너무 파격적이고, 마약과 성의 묘사가 지나치다는 이유였다. 마침내 1957년 출간된 『길 위에서』는 단숨에 세대의 성경이 되었다. 살 파라다이스와 딘 모리아티가 대륙을 횡단하는 이 소설은 사실 케루악 자신과 친구 닐 캐서디의 실화였다. 미국 전역을 누빈 여행들, 재즈 클럽의 밤들, 멕시코의 마약. 소설이 출판되자 수백만 명의 청년이 배낭을 메고 길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케루악은 이 성공을 감당하지 못했다. 언론이 만든 ‘비트의 왕’ 이미지가 그를 짓눌렀다. 어머니와 같이 살았으며, 알코올 중독이 심해졌다. 47세에 그는 로웰에서 술로 인한 내출혈로 사망했다. 미국을 가장 생생하게 달린 작가가 결국은 고향에서 조용히 멈췄다.
긴즈버그: 시로 쓴 고발장
1926–1997
앨런 긴즈버그의 어머니 나오미는 정신 질환을 앓았다. 소련의 스파이에게 쫓긴다는 망상 속에서 살다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긴즈버그는 뉴저지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공산주의자 아버지와 정신이상자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케루악과 버로스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이 아웃사이더임을 알고 있었다. 동성애자였고, 유대인이었으며, 좌파였다.
1955년 10월 7일 샌프란시스코의 식스 갤러리에서 긴즈버그는 「울부짖음(Howl)」의 첫 낭독을 했다. 당시 청중 중에는 케루악도 있었는데, 그는 낭독이 진행되는 동안 와인 병을 들고 “Go! Go! Go!”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내 세대의 최선들이 광기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굶주리고 발가벗겨지고 히스테리컬하게.” 시가 끝났을 때 청중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한다.
“미국,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주었는데 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다. 미국, 나는 11달러 27센트를 가지고 있다. 1956년 1월 17일. 나는 취하지 않을 수 없다.”
— 앨런 긴즈버그, 「미국」
「울부짖음」은 외설죄로 기소되었다. 1957년 샌프란시스코 법정에서 열린 재판은 미국 문학 검열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되었다. 재판장은 시가 “사회적 중요성(social importance)”을 가진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헨리 밀러의 소설들과 D. H. 로렌스의 작품들도 미국 내 출판이 가능해졌다. 한 편의 시가 미국의 표현의 자유를 넓혔다.
긴즈버그는 비트 세대에서 가장 오래, 가장 공개적으로 살았다.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서 구호를 외쳤고, 핵 발전소 앞에서 노래했으며,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글을 썼다. 71세에 간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는 시를 썼고, 강의를 했으며, 분노했다.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버로스: 언어 자체를 해체한 자
1914–1997
윌리엄 S. 버로스는 세 사람 중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하버드를 졸업했고, 나이도 케루악과 긴즈버그보다 열 살 이상 많았다. 그는 마약 중독자였으며, 헤로인을 구하러 멕시코시티의 뒷골목을 쏘다녔다. 1951년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아내 조앤 볼머와 ‘윌헬름 텔 게임’을 하다가 그녀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 머리 위의 컵을 맞히려다 빗나간 것이었다. 그는 이 사고가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나는 죠앤 없이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쓰게 만든 것은 그녀의 죽음이었다.”
버로스의 문학적 방법론은 ‘컷업(cut-up)’이었다. 이미 쓰인 텍스트를 가위로 자르고, 무작위로 다시 배열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데이비드 보위와 토킹 헤즈가 나중에 이 방식으로 가사를 썼다. 버로스는 언어를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통제와 지배의 도구로 보았다. 광고, 정치 선전, 종교 — 이 모두가 언어로 인간을 조종한다. 언어를 해체하는 것은 그 통제로부터 탈출하는 행위였다.
“언어는 바이러스다. 외부 우주에서 왔다.”
— 윌리엄 S. 버로스
『네이키드 런치』는 1959년 파리의 올림피아 프레스에서 출판되었다. 선형 서사가 없다. 각 챕터는 독립적이며, 순서 없이 읽어도 된다고 버로스는 말했다. 약물 중독의 환각, 폭력, 섹스, 관료주의의 그로테스크한 풍자가 뒤엉킨다. 미국에서는 외설죄로 6년간 금서였고, 이 역시 법원 판결로 해금되었다. 버로스에게 문학은 도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부학이었다 — 인간과 사회의 가장 더럽고 숨겨진 부분을 들여다보는 메스.
세 가지 탈출, 하나의 분노
세 사람은 같은 시대, 같은 미국을 살았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것으로부터 도망쳤다. 케루악은 속도로 도망쳤다. 차를 타고 달렸고, 말이 쏟아지는 속도로 글을 썼다. 멈추면 현실이 따라온다. 달리는 한 자유롭다. 긴즈버그는 목소리로 싸웠다. 그는 도망치는 대신 멈춰 서서 소리를 질렀다. 시는 그에게 무기였고, 연단이었으며, 기도였다. 버로스는 해체로 응수했다. 달리지도, 싸우지도 않았다. 대신 언어와 서사 자체를 분쇄하여 지배 구조가 기댈 의미의 토대를 제거했다.
케루악
속도와 즉흥
멈추지 않는 타이핑, 끝없는 도로. 현재의 흐름을 그대로 포착한다.
긴즈버그
목소리와 분노
낭독, 시위, 기도. 시는 침묵을 깨는 행위이고 사회를 향한 고발장이다.
버로스
해체와 실험
컷업, 비선형 서사. 언어 자체를 무너뜨려 새로운 의식의 공간을 연다.
“우리는 새벽의 첫 번째 문장을 향해 달렸다. 그것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우리는 달리면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비트 이후: 반문화의 씨앗
비트 제너레이션의 직접적인 활동 기간은 짧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채 10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심은 씨앗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자랐다. 1960년대 히피 운동은 비트의 자유 정신을 이어받았고, 밥 딜런은 긴즈버그의 시적 방식에서 노래를 배웠다. 더 클래쉬와 섹스 피스톨스의 펑크 반항은 버로스적 파괴의 정신과 닿아 있다. 잭 케루악의 이름을 붙인 도로가 로웰에 생겼다.
비트는 또한 미국이 억압해온 것들을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동성애, 인종 간 우정(케루악은 흑인 재즈 문화에 깊이 매혹되었다), 마약 중독, 반전 사상. 이 주제들은 당시에는 위험한 것들이었다. 비트 작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썼고, 법정에서 싸웠으며, 결과적으로 미국 표현의 경계를 넓혔다.
세 사람은 서로 사랑했고, 때로 미워했다. 케루악은 말년에 버로스와 긴즈버그의 급진적 정치에 등을 돌렸다. 보수화된 케루악을 보며 긴즈버그는 괴로워했다. 버로스는 누구와도 오래 가깝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만든 것 — 미국 문학의 가장 뜨겁고 더럽고 솔직한 한 챕터 — 은 영구히 기록으로 남았다. ‘길 위에서’라는 표현이 지금도 어떤 자유와 탈출을 의미할 때, 그 뒤에는 케루악이 있다.
대표작
- 잭 케루악: 길 위에서(1957), 지하생활자들(1958), 다르마 부랑자들(1958), 빅 서(1962)
- 앨런 긴즈버그: 울부짖음 및 다른 시들(1956), 카디쉬와 다른 시들(1961), 리얼리티 샌드위치(1963)
- 윌리엄 S. 버로스: 정키(1953), 퀴어(1985, 1952년 집필), 네이키드 런치(1959), 노바 익스프레스(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