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시상식장에서 자하 하디드가 단상에 올랐다. 그녀는 이라크 출신의 여성이었다. 쉰넷이 될 때까지 지어진 건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종이 위에 그린 것들은 이미 세계 건축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 해, 일본의 안도 다다오는 콘크리트 교회 하나가 오사카 외곽에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었고, 이탈리아의 렌조 피아노는 런던 남쪽 땅에 유리와 강철로 된 파편 같은 탑을 구상하고 있었다. 세 건축가, 세 가지 질문. 공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태어나는가.
20세기 건축이 이념의 건축이었다면, 21세기 건축은 감각의 건축이다.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었다면, 자하 하디드와 안도 다다오와 렌조 피아노는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를 묻는다. 재료는 달라졌지만 건축의 근본 욕망은 같다 — 인간의 경험을 형태로 만드는 것.
세 건축가의 궤적
자하 하디드 (1950–2016) · 이라크 바그다드 출생 · 첫 여성 프리츠커상 수상자(2004)
안도 다다오 (1941– ) · 일본 오사카 출생 · 독학 건축가, 프리츠커상(1995)
렌조 피아노 (1937– ) ·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 · 하이테크 건축의 선구자, 프리츠커상(1998)
자하 하디드: 유클리드 기하학을 해방시킨 자
1950–2016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베이루트에서 수학을 배우고 런던 건축협회 대학원(AA School)에 진학한 자하 하디드의 초기 설계들은 당대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그린 도면은 건물인지 회화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홍콩 더 피크 클럽 현상설계(1983)에서 1등을 했지만 실제로 지어지지 않았다. 카디프의 오페라 하우스도, 독일 뒤스부르크의 미술관도 선정 후 취소되었다. 세상은 아직 그녀의 건물을 지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완공한 첫 번째 대형 건물은 1994년 독일 바일암라인의비트라 소방서(Vitra Fire Station)였다. 예각과 날카로운 사선들이 마치 방금 폭발에서 튀어나온 파편처럼 얼어붙은 형태. 이것은 단순한 디자인 언어가 아니었다. 하디드는 뉴턴의 중력법칙 대신 원심력과 회전 운동의 역학을 건축에 도입하려 했다. 직선과 직각이 지배하던 건축 문법에 곡선과 비틀림을 삽입한 것이다.
“90도 각도가 삶의 표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연 어디에도 직선은 없습니다.”
— 자하 하디드
2010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완공된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는 그 철학의 정수다. 건물과 광장, 지면과 지붕의 경계가 사라진다. 하나의 흐르는 표면이 지면에서 솟아올라 지붕이 되고 다시 지면으로 돌아온다. 기둥도, 명확한 외벽도 없다. 중력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 자체를 재정의한 건물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천장인지 잠시 혼란스럽다. 그 혼란이 바로 하디드가 원하는 경험이었다.
하디드의 건물들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녀는 디지털 설계 도구가 일반화되기 전에 이미 그 형태들을 상상했다. 도구가 상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상상이 도구를 필요로 했다. 2016년 그녀가 65세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30여 개였다. 건축계는 잠시 멈추었다. 가장 긴박하게 미래를 향해 달리던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안도 다다오: 빛을 건축하다
1941–
안도 다다오는 정식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다. 권투 선수로 아마추어 챔피언을 지낸 적 있는 그는 스물두 살부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서유럽과 미국을 홀로 여행하며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들을 직접 보고 노트에 스케치했다. 그런데 그가 배운 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형태가 아니었다. 빛이 콘크리트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방식이었다.
1989년 오사카 이바라키에 완공된 빛의 교회(Church of the Light)는 그 탐구의 결정이다. 15평 남짓한 작은 예배당. 정면 벽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잘린 틈만 있다. 바닥도, 의자도, 장식도 없다. 콘크리트와 빛뿐이다. 오전 예배 시간, 동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십자가 모양으로 바닥에 내려앉는다. 그것이 제단이고, 그것이 성소다. 재료는 가장 저렴했지만 효과는 가장 숭고했다.
“나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과 그림자의 조각을 설계합니다.”
— 안도 다다오
안도의 콘크리트는 보통 콘크리트가 아니다. 타설 후 정밀하게 연마한노출 콘크리트(béton brut)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것은 거칠지 않다. 손을 대면 비단처럼 차갑고 매끄럽다. 재료의 솔직함과 장인의 정밀함이 공존하는 표면. 일본 건축의 와비사비(侘寂)미학 — 불완전함과 무상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 이 서양의 근대 재료와 결합한 것이다.
1994년 세토나이 해의 섬 나오시마에 지어진 지추미술관(Chichu Art Museum)은 건물 전체가 땅 속에 묻혀 있다. 지상에서 보면 건물이 없다. 안으로 내려가면, 모네의 수련 연작이 자연광 아래 놓여 있다. 인공조명 없이, 그날의 날씨와 시간에 따라 그림의 색이 달라진다. 미술관이 그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그림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다. 안도는 건물이 작품의 보관함이 되기를 거부했다.
안도는 1994년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이후 당뇨와 지속적인 건강 문제를 겪으면서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는 강의에서 자주 말한다. “콘크리트를 다루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 씨름이 빛의 교회를, 지추미술관을 만들어냈다.
렌조 피아노: 도시에 선물을 남기는 자
1937–
1971년 파리, 두 젊은 건축가가 조르주 퐁피두 문화센터 국제 현상설계에 참가했다. 이탈리아인 렌조 피아노와 영국인 리처드 로저스는 혁신적인 안을 제출했다. 건물의 모든 구조와 설비 — 에스컬레이터, 환기 덕트, 배관, 전선 — 를 외부로 꺼내놓는 것이었다. 내부 공간을 완전히 비워 유연하게 쓸 수 있게 하고, 건물의 뼈대 자체를 전시물로 만드는 발상. 1등을 차지했다. 프랑스 건축계는 경악했고 파리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완공 전까지 이 건물을 “파리 한가운데 정유 공장”이라 불렀다.
1977년 문을 연 퐁피두 센터는 개관 첫 해에 루브르 미술관 방문객 수를 넘어섰다. 비판자들이 어처구니없어했다. 피아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이테크 건축의 언어를 확립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하이테크’는 단순히 기술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구조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건물이 어떻게 서 있는지를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건축의 투명성, 그것이 그의 일관된 철학이다.
“건물은 도시의 것입니다. 도시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도시에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 렌조 피아노
2012년 런던 템스강 남쪽에 완공된 더 샤드(The Shard)는 피아노의 후기 스타일을 보여준다. 309미터 높이의 유리 파편. 꼭대기로 갈수록 층이 얇아지며 공중에서 흩어지듯 사라진다. 피아노는 이 건물을 설계할 때 런던의 역사적 구도심 실루엣과 빅토리아 시대의 첨탑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대 건축이 역사적 도시 맥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더 샤드가 논란을 낳으면서도 결국 런던의 아이콘이 된 것은, 그 대화가 성공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피아노의 특이한 점은, 그가 대규모 프로젝트와 동시에 작고 섬세한 작업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1998년 그는 제노바 항구에 작은 수족관을 증축했다. 어린 시절 항구를 바라보며 자란 고향에 대한 선물이었다. 그는 자주 말한다. “건축은 새로운 것을 짓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수복하고 이어가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파괴가 아닌 연속, 대체가 아닌 대화.
세 개의 공간 철학
세 사람은 모두 프리츠커상을 받았지만, 심사위원회가 각각에게 붙인 수식어는 전혀 달랐다. 하디드에게는 “혁명적”, 안도에게는 “명상적”, 피아노에게는 “시적”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이 세 단어가 21세기 건축의 세 방향을 요약한다.
자하 하디드
혁명 — 형태의 해방
- 유클리드 기하학 너머의 유동적 곡선
- 중력에 저항하는 파라메트릭 구조
- 건물과 대지의 경계를 지운다
- 디지털 기술이 상상을 현실로
안도 다다오
명상 — 빛과 침묵
- 노출 콘크리트의 촉각적 순수함
- 건축으로 빛을 조각한다
- 와비사비 — 불완전 속의 아름다움
- 자연과 내부 공간의 연결
렌조 피아노
시 — 도시와의 대화
- 구조의 투명한 솔직함
- 도시 맥락을 존중하는 설계
- 하이테크는 과시가 아닌 소통
- 건물은 도시에 주는 선물
건물 너머의 공통점
세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묘한 접점이 있다. 안도 다다오는 자하 하디드의 건물을 보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피아노는 안도의 빛의 교회를 “건물이 아니라 경험의 장치”라고 평했다. 하디드는 피아노의 퐁피두 센터를 “건축이 정치적 선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불렀다.
하디드는 형태로 자유를 선언했고, 안도는 침묵으로 빛을 불러들였으며, 피아노는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도시와 악수했다.
세 사람 모두 건물을 통해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쓰고 있었다.
셋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교육’과 ‘외부인’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다. 안도는 독학자다. 하디드는 이라크 출신 여성으로 서구 건축계의 아웃사이더였다. 피아노는 이탈리아인으로 영국인 로저스와 팀을 이루어 프랑스의 중심부에 도전했다. 그들은 모두 주류 밖에서 왔고, 주류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주류 자체를 바꿀 수 있었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세 사람 모두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계속 그것을 돌본다. 안도의 나오시마 섬 프로젝트는 1992년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으로 시작해 30년에 걸쳐 섬 전체를 예술의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피아노는 제노바의 구항구 재생 프로젝트를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하디드 역시 생전에 자신의 건물들이 도시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추적하고 수정을 거듭했다. 건물은 완공될 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완성된다는 믿음이었다.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말이 있다. 1997년 스페인 소도시 빌바오에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자 관광객이 몰리고 도시 경제가 되살아난 현상을 일컫는다. 이후 전 세계 도시들은 ‘스타 건축가의 건물’로 도시를 재생하려 했다. 그러나 하디드도, 안도도, 피아노도 이 트렌드를 경계했다. 건물은 도시를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도시가 건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역방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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