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을 전후한 20년. 낭만주의라는 거대한 강이 마침내 바다로 흘러 들어가려 할 때, 세 사람이 강가에 서 있었다. 말러는 교향곡을 세계만큼 크게 부풀렸고, 슈트라우스는 도발에서 작별의 시로 선회했으며, 라흐마니노프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끝까지 아름답게 껴안았다. 이 세기말의 세 거인은 음악사에서 낭만주의의 마지막 황혼을 밝힌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 면식이 있었다. 말러와 슈트라우스는 빈과 베를린에서 만났고, 상대의 음악에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보냈다. 라흐마니노프는 말러의 지휘 아래 모스크바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세 사람은 전혀 달랐다. 같은 황혼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색으로 물들였다.
말러: 세계를 교향곡 안에 욱여넣다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짧은 작품도 연주 시간이 45분을 넘는다. 교향곡 3번은 100분이 넘어 단일 교향곡으로는 역사상 가장 길다.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는 이 선언을 그대로 실천했다.
1860년 보헤미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말러는 평생 세 정체성 사이를 유랑했다. 오스트리아인도, 유대인도, 보헤미아인도 완전히 될 수 없었다. 그 경계의 불안이 음악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의 교향곡에서는 전원의 목가와 군대 행진과 죽음의 춤과 천국의 노래가 같은 악장 안에 공존한다. 모순이 아니라, 그것이 삶이라는 듯이.
“나는 세 번 고향이 없는 자다.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서 보헤미아 인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전체에서 유대인으로.”
빈 궁정 오페라 감독으로 10년을 군림하며 악단을 일류로 끌어올렸지만, 반유대주의의 물결이 결국 그를 몰아냈다. 뉴욕 필하모닉으로 대서양을 건넜고, 52세에 심장 이상으로 세상을 떠나며 교향곡 10번을 미완성으로 남겼다.
그의 ‘대지의 노래’는 당나라 시인 이백·왕유의 시에 곡을 붙인 기이한 걸작이다. 중국 시와 독일 오케스트라, 삶의 덧없음과 자연의 영원함이 충돌하고 화해한다. 마지막 악장 ‘고별’은 50분에 걸쳐 천천히 침묵으로 녹아드는데, 이것이 말러가 음악으로 남긴 가장 완전한 진술이다 — 모든 것은 결국 고요로 돌아간다는.
슈트라우스: 도발자에서 고별의 시인으로

1896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철학을 관현악으로 번안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초연했다. 오늘날 영화로 익숙한 그 오프닝. 당시 청중에게 그것은 도발이었다. 음악이 철학을 논할 수 있는가? 오케스트라가 존재의 의미를 질문할 수 있는가?
뮌헨에서 태어난 슈트라우스는 일찍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아버지가 뮌헨 궁정 오케스트라의 호른 수석이었으니, 음악은 태어날 때부터 공기였다. 10대에 이미 교향곡을 완성했고, 30대에는 유럽 최고의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군림했다. ‘돈 후안’, ‘죽음과 변용’, ‘돈 키호테’ — 그의 교향시들은 음악이 얼마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살로메’의 수익금으로 가르미슈에 빌라를 지었다. 세례 요한에게 감사해야겠군.”
그러나 슈트라우스는 전략가이기도 했다. ‘살로메’와 ‘엘렉트라’로 불협화음의 극단까지 밀어붙인 후, 그는 돌연 방향을 틀었다. 1911년 ‘장미의 기사’로 달콤하고 관능적인 선율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비평가들은 배신이라 했지만, 그는 아름다움을 선택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말년이다. 나치 정권 하에서 문화원장직을 잠시 맡았다가 결별한 후,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그는 84세에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완성했다. ‘봄’, ‘9월’, ‘잠들 때’, ‘황혼’ — 네 편의 시에 붙인 이 노래들은 한 삶이 세계에 건네는 작별 인사다. 1948년 그가 완성하고, 1950년 초연됐다. 그는 그 사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 앞의 고요함, 받아들임, 아름다움. 낭만주의가 줄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마지막이었다.
라흐마니노프: 사라지는 것들을 끝까지 껴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고국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가 남긴 음악의 절반은 이 상실의 감각으로 물들어 있다.
모스크바 근처 귀족 영지에서 태어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종소리, 자작나무 숲의 겨울, 끝없는 스텝의 광활함이 배어 있다. 그것은 의도적인 양식이 아니라 그의 DNA다. 그는 평생 그 소리를 잊지 못했고, 잊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고향과 나 자신을 잃은 유령이다. 음악을 쓰는 열정도 잃어버렸다. 망명한 작곡가의 그림자만 남았을 뿐이다.”
1897년, 교향곡 1번 초연이 악평으로 무너졌을 때, 라흐마니노프는 3년간 손가락을 건반에 대지 못했다. 극심한 우울증. 최면치료사 달 박사의 치료 끝에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했다. 그 첫 악장의 도입부 — 개별 음들이 서서히 화음으로 쌓이며 성당의 종처럼 울리는 그 16마디 — 는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순간 중 하나다.
혁명 후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연주자로 생계를 이었다. 이 시기 거의 25년간 완성한 작품은 여섯 곡뿐. 그 중 하나인 ‘교향적 무곡’의 마지막 악장에는 젊은 날 실패했던 교향곡 1번의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그는 비로소 그 상처와 화해했다.
세 개의 황혼, 하나의 믿음
말러는 1911년, 라흐마니노프는 1943년, 슈트라우스는 1949년에 세상을 떠났다. 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세계는 두 차례의 대전과 혁명으로 갈가리 찢겼다. 낭만주의는 시대착오라는 선고를 받았다. 쇤베르크는 조성을 해체했고, 스트라빈스키는 리듬을 전위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았다. 말러는 그것을 우주적 규모로 팽창시켰고, 슈트라우스는 그것을 우아하게 마무리했으며, 라흐마니노프는 그것을 그리움으로 보존했다.
오늘 저녁, 말러의 ‘고별’로 시작해서 슈트라우스의 ‘황혼’을 지나,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 2악장으로 마무리하는 밤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낭만주의의 마지막 불꽃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아름답게 타올랐는지를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추천 감상곡
- 말러: 교향곡 9번 1악장, ‘대지의 노래’ — 고별,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전곡,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프닝), 장미의 기사 중 3중창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교향적 무곡 Op.45,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