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은 혼란 속에 있었다. 종교전쟁이 대륙을 피로 물들였고, 갈릴레오는 지구가 돈다고 말했다가 재판에 회부되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성경? 교회?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이 혼란 속에서 세 명의 철학자가 새로운 출발점을 찾았다.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것”에서 시작했고, 스피노자는 “신”을 재정의했으며, 라이프니츠는 “가능한 모든 세계”를 계산했다. 그들은 신학에서 벗어나 이성만으로 진리에 도달하려 했다. 근대 철학의 시작이었다.
흥미로운 건, 세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책을 읽고 철학에 눈떴고,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직접 만났다. 그러나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완전히 달랐다.
데카르트: 모든 것을 의심한 자

1637년, 네덜란드에 숨어 살던 프랑스인이 한 권의 책을 출판했다.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는 이 책에서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모든 것을 의심하라.
감각은 때때로 우리를 속인다. 꿈속에서도 우리는 깨어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악마가 우리에게 거짓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가?
데카르트의 답은 유명하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 의심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한 문장에서 근대 철학이 시작되었다. 신의 계시가 아니라,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오직 이성적 사유만이 진리의 토대가 되었다. 데카르트는 이 확실한 출발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외부 세계의 실재를 논증했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문제를 남겼다. 정신과 육체는 완전히 다른 실체라고 주장한 것이다. 생각하는 정신과 연장을 가진 육체. 이 둘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데카르트는 뇌의 송과선에서 둘이 만난다고 했지만, 이 답은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스피노자: 신을 재정의한 이단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랐다. 총명한 청년이었지만, 23세에 유대교에서 파문당했다. 그의 사상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파문장은 그를 “저주받은 자”라 불렀고, 아무도 그와 대화하거나 가까이 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거부했다. 정신과 육체가 별개의 실체라면,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 그의 답은 급진적이었다.실체는 오직 하나뿐이다.그것을 신이라 불러도 좋고, 자연이라 불러도 좋다. “Deus sive Natura” — 신 즉 자연.
“신 외에는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실체도 생각될 수 없다.”
이것은 범신론이었다. 신은 세계 밖에서 세계를 창조한 인격적 존재가 아니다. 신은 곧 자연이며, 모든 것은 신의 표현이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도 하나의 실체를 다른 측면에서 본 것일 뿐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의지란 환상이었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은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돌이 날아가면서 “나는 자유롭게 날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웃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절망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필연을 이해하면, 우리는 정념에서 벗어나 평정에 도달한다.
라이프니츠: 최선의 세계를 계산한 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천재였다. 뉴턴과 독립적으로 미적분을 발명했고(그리고 표기법은 라이프니츠의 것이 더 좋아서 지금도 사용된다), 이진법을 연구했으며, 계산기를 만들었다. 철학은 그의 수많은 관심사 중 하나였을 뿐이다.
1676년,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만나기 위해 헤이그를 방문했다. 두 사람은 며칠간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신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를 모두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모나드”라는 개념에 기초한다. 세계는 무한히 많은 단순 실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모나드는 창문이 없다 — 다른 모나드와 직접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이 “예정 조화”를 통해 모든 모나드를 조율한다. 마치 서로 다른 시계들이 같은 시간을 가리키도록 맞춰진 것처럼.
“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의 세계이다.”
이 주장은 후에 볼테르에 의해 「캉디드」에서 신랄하게 풍자되었다.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계가 “최선”이라니?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논리는 이랬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선하다. 신은 무한히 많은 가능한 세계 중에서 선택했다. 따라서 신이 선택한 이 세계는 가능한 최선이다. 악조차도 더 큰 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낙관주의자였다. 스피노자가 필연을 받아들이라고 했다면,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에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둘 다 데카르트의 제자였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다.
이성의 시대를 연 자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세 사람은 모두 “합리론자”로 불린다. 경험이 아니라 이성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학적 확실성을 철학에 가져오려 했다. 기하학이 공리에서 정리를 도출하듯, 철학도 확실한 원리에서 체계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확실한 출발점을 찾아 모든 것을 의심하다
신과 자연을 하나로 보고 필연을 받아들이다
이 세계에서 목적과 조화를 발견하다
그들의 영향은 지대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모든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스피노자의 사상은 괴테, 헤겔, 아인슈타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라이프니츠의 논리학은 현대 컴퓨터 과학의 선구가 되었다.
물론 그들의 합리론은 후에 흄과 칸트에 의해 비판받게 된다. 순수한 이성만으로 세계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다음 이야기다. 적어도 이 세 사람은 철학을 신학의 시녀에서 독립시켰다. “나는 생각한다”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당신이 지금 “정말 그런가?”라고 의심하고 있다면, 이미 데카르트의 후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