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앞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의 선언이다. 88개의 건반, 공통된 물리 법칙, 동일한 악보 — 그런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앉으면 피아노는 불꽃이 되고, 글렌 굴드가 앉으면 건축물이 되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앉으면 살아 있는 야수가 된다. 같은 악기에서 이렇게 다른 우주가 펼쳐지는 이유를 탐구하는 것은 곧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의 가능성을 묻는 일이다.
세 사람은 20세기의 같은 하늘 아래에 살았지만 서로 교차하는 방식이 달랐다. 호로비츠는 굴드를 두고 "훌륭하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말했다. 굴드는 아르헤리치의 녹음을 듣고 경탄했으나 공개 석상에서 그녀를 마주치면 어색하게 모자를 눌러쓰고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아르헤리치는 두 사람 모두에 대해 절대적 존경을 표했지만, 정작 자신은 두 사람 중 누구와도 다른 방식으로 피아노를 대했다. 세 사람을 한 자리에 놓으면 공통점보다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불꽃의 언어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1928년 1월, 스물네 살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처음 올랐다. 그날 그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아니었다. 지휘자인 토마스 비첨이 템포를 따라오지 못하자, 호로비츠는 오케스트라를 아예 끌어당겨 버렸다. 그가 원하는 속도로, 그가 원하는 강도로. 청중은 열광했고, 뉴욕 타임스는 "악마가 피아노를 치러 왔다"고 썼다.
"나는 피아노가 노래하기를 원한다. 오케스트라처럼, 인간의 목소리처럼.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일 밤 반박한다."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호로비츠의 피아노는 색채의 예술이었다. 그는 피아니시모(pp)에서 인간의 귀가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소리까지 내려갔고, 포르티시모(ff)에서는 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 음량의 스펙트럼이 그가 만들어내는 극적 긴장의 원천이었다. 동료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은 "호로비츠의 피아니시모를 들으면 귀를 의심하게 된다. 실제로 소리가 나고 있는 건지"라고 회고했다.
그는 두 번의 긴 은퇴를 경험했다. 1953년부터 12년, 1969년부터 5년. 완벽주의와 무대 공포증, 그리고 건강 문제가 뒤엉킨 공백이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올 때마다 청중은 전보다 더 뜨겁게 반응했다. 1986년, 여든두 살의 호로비츠가 모스크바 음악원 무대에 섰을 때 — 6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망명 예술가 — 청중석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음악이 아닌, 역사가 울었다.
침묵의 건축가 — 글렌 굴드
1964년 4월 10일, 서른한 살의 글렌 굴드는 시카고에서 마지막 공개 연주를 마친 뒤 다시는 콘서트 무대에 서지 않았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선언이었다. 굴드는 연주회라는 형식 자체가 음악을 왜곡한다고 믿었다. 청중의 기대, 조명, 박수 — 이 모든 것이 음악과 연주자 사이에 끼어드는 방해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녹음 스튜디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상적인 청취자는 집에서 헤드폰을 쓰고 혼자 듣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속도로 음악과 대화할 수 있다. 콘서트홀의 군중 속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 글렌 굴드
굴드의 피아노는 지성의 언어였다. 그가 1955년에 녹음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바흐는 장중하고 느리게 연주되는 것이 관례였다. 굴드는 그 관례를 완전히 무시했다. 빠르고 투명하고 각 성부가 살아 숨쉬는 연주 — 마치 건물의 설계도를 눈앞에 펼쳐 보이듯이. 그리고 26년 뒤인 1981년, 그는 같은 곡을 다시 녹음했다. 그 해 10월 세상을 떠나기 불과 열흘 전에 완성한 녹음은, 1955년 버전과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느리고 명상적이며 작별을 고하는 듯한 굴드의 마지막 유언.
굴드는 기이한 습관으로도 유명했다.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와 장갑을 착용했고, 낮은 의자에 앉아 건반 바로 위에 얼굴을 들이밀듯이 연주했다. 연주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허밍을 했는데 — 이 소리가 녹음에도 잡혀 음반 제작자들의 골칫거리였다 — 굴드는 그것을 멈출 수도 없었고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음악은 몸 전체로 생각하는 행위였다.
야성의 불꽃 — 마르타 아르헤리치
1965년 바르샤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스물네 살의 아르헨티나 여성이 무대에 올랐을 때,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거장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홀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빠르기가 아니었다. 어떤 음도 계산되지 않은 듯 보이면서도 모든 음이 정확한 위치에 떨어지는 이 모순적인 자유로움 —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심사 중에 "저 아이는 반칙을 쓰고 있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찬사였다.
"나는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연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주 취소한다. 하지만 일단 앉으면 — 그때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 마르타 아르헤리치
아르헤리치는 피아니즘의 야성을 대표한다.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그녀의 녹음은 지금도 '이 곡의 기준'으로 통한다. 첫 악장의 빠르기는 당대 어떤 녹음보다 빠르지만, 단 한 음도 급하게 들리지 않는다. 빠름과 여유가 공존하는 이 역설은 오직 아르헤리치만이 구현하는 영역이다. 그녀는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서 속도를 내는 게 아니라, 그 속도가 음악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렇게 연주한다.
그러나 그녀는 반복적인 연주 취소로도 악명이 높다.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이 공식 무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 아르헤리치 자신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청중은 무조건 용서한다. 단 한 번의 연주가 모든 기다림을 보상하기 때문이다.
같은 건반, 세 가지 진실
흥미롭게도, 세 사람 모두 쇼팽의 녹턴을 녹음했다. 같은 악보, 같은 악기, 다른 우주. 호로비츠의 녹턴은 밤의 색채를 층층이 쌓아올린 유화다. 굴드의 녹턴은 — 사실 그는 쇼팽을 즐기지 않았다고 고백했지만 — 주목할 만하게도 지나치게 명석하고 냉정하여 오히려 쇼팽의 감상성을 해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르헤리치의 녹턴은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고요함처럼 예상치 못한 내면의 깊이를 보여준다.
세 사람의 차이는 결국 피아노에 무엇을 원하는가의 차이다. 호로비츠는 피아노가 노래하기를 원했다 — 인간의 목소리보다 더 완벽하게. 굴드는 피아노가 생각하기를 원했다 —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도록. 아르헤리치는 피아노가 느끼기를 원했다 — 연주자의 몸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위해. 어느 쪽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세 가지 방식 모두 피아노가 도달할 수 있는 극단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타악기이면서 선율 악기다. 소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악기다. 이 본질적인 모순 위에서 호로비츠는 불멸의 색채를 만들었고, 굴드는 투명한 구조를 세웠으며, 아르헤리치는 생명 자체를 불어넣었다. 그들이 남긴 녹음들은 악기의 한계가 아닌 해석자의 우주가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오늘 밤, 당신이 쇼팽의 발라드를 틀어놓는다면 — 누구의 버전을 고르느냐에 따라 당신은 세 개의 전혀 다른 밤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