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오랜 전제가 있다. 인간은 합리적이다.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고, 이익을 계산하며, 일관된 선호에 따라 선택한다 — 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이 가정 위에 20세기 경제학의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그리고 세 사람이 그 건물의 기초를 흔들었다.
리처드 세일러, 대니얼 카너먼, 조지 애커로프. 이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실제 인간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시장에서 정보는 어떻게 흐르는가? 그 답들은 교과서의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간은 손실을 이익보다 두 배 이상 크게 느끼고, 넛지 하나에 저축률을 바꾸며, “레몬” 한 개가 시장 전체를 망가뜨린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입구에서 같은 진실에 다가갔고, 그 여정은 모두 노벨 경제학상으로 끝났다.
세 경제학자의 궤적
리처드 세일러 (1945– ) · 미국 뉴저지 출생 · 시카고대 교수 ·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 노벨상 2017
대니얼 카너먼 (1934–2024) ·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생 · 프린스턴대 교수 · 전망이론(Prospect Theory) · 노벨상 2002
조지 애커로프 (1940– ) · 미국 뉴헤이븐 출생 · UC버클리 교수 · ‘레몬 시장’ 논문 · 노벨상 2001
카너먼: 인간의 뇌에는 두 개의 시스템이 있다
1934–2024
대니얼 카너먼은 심리학자다. 그러나 2002년 그는 경제학 노벨상을 받았다.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에게 경제학 노벨상이 주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선택위원회의 논리는 단순했다. 카너먼이 경제학의 핵심 전제, 즉 인간이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가정을 심리학 실험으로 철저히 반박했기 때문이다.
카너먼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이다. 1979년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발표한 이 논문에서 그들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기대효용 이론과 전혀 다르게 작동함을 보였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에 훨씬 민감하다 —1만 원을 잃는 고통이 1만 원을 얻는 기쁨의 약 2.5배다. 둘째, 인간은 이미 가진 것을 기준점(reference point)으로 삼아 득실을 평가한다. 따라서 같은 금액이라도 ‘얻음’으로 표현하느냐 ‘잃음’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손실 가능성에 두 배로 민감하다면, 어떤 시장에서도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가격 격차는 이론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2011)
카너먼은 말년에 두 시스템의 비유로 자신의 연구를 집약했다. 시스템 1은 빠르고, 자동적이며, 직관적이다. 시스템 2는 느리고, 의식적이며, 논리적이다.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은 시스템 2만으로 작동하는 존재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대부분의 결정은 시스템 1이 내린다. 그리고 시스템 1은 체계적으로 틀린다. 기준점 편향, 가용성 편향, 대표성 편향 — 이 오류들은 무작위적이지 않으며, 예측 가능하다. 예측 가능한 오류란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세일러: 편향을 알면 선택을 설계할 수 있다
1945–
리처드 세일러는 대학원생 시절 한 가지 관찰에서 출발했다. 그의 지도교수는 직접 기르는 포도주를 100달러에는 팔지 않으면서, 35달러 이상 주고는 새 포도주를 사지 않으려 했다. 경제학 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병의 포도주가 ‘파는 가격’과 ‘사는 가격’이 다른 이 현상을 세일러는 ‘보유효과(Endowment Effect)’라 명명했다. 이미 가진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 편향은 카너먼의 손실회피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세일러의 또 다른 발견은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다. 경제학 이론에서 돈은 동등하다. 월급 100만 원과 도박으로 딴 100만 원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실제 인간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뜻밖에 생긴 돈은 더 쉽게 쓴다. 세금 환급금은 필수 지출이 아니라 ‘공돈’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돈을 출처와 용도에 따라 별도의 심리적 계좌에 넣어 관리한다. 이것이 비합리적이지만, 이 비합리성에는 패턴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델링한다. 우리는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연구한다.”
— 리처드 세일러
세일러의 가장 큰 정책적 기여는 캐스 선스타인과 함께 쓴 ‘넛지(Nudge)’다. 2008년에 출판된 이 책은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의 개념을 대중화했다. 사람들을 강제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선택지를 배열하는 방식만 바꿔도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예가 퇴직연금 자동 가입 제도다. 기존에는 직원이 신청해야 가입되었다. 세일러의 제안으로 ‘자동 가입, 원하면 탈퇴’로 기본값을 바꾸자 가입률이 극적으로 높아졌다. 누구를 강요하지 않았는데, 인간의 관성 편향을 이용해 선택을 바꾼 것이다.
세일러는 스스로를 “게으른 경제학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게으름 덕분에 그는 이론보다 현실에 가까이 있었다. 2017년 노벨상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금 900만 스웨덴 크로나를 어떻게 쓸 생각이냐고요? 최대한 비합리적으로요.”
애커로프: 레몬 한 개가 시장을 무너뜨린다
1940–
1970년, 조지 애커로프는 중고차 시장에 관한 논문을 썼다. “레몬 시장: 품질 불확실성과 시장 메커니즘(The Market for Lemons)”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세 군데 학술지에서 거절당했다. 거절 이유는 “너무 당연한 내용” 혹은 “경제학적으로 너무 사소한 주제”였다. 30년 후 애커로프는 그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핵심 아이디어는 이렇다.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는 차의 품질을 안다. 구매자는 모른다. 이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이 시장 전체를 왜곡한다. 구매자는 차가 나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안해 낮은 가격만 지불하려 한다. 그러면 좋은 차를 가진 판매자는 그 가격에 팔지 않는다. 시장에는 나쁜 차, 즉 ‘레몬’만 남는다. 결국 좋은 차와 나쁜 차가 공존할 수 있는 시장이 붕괴된다. 정보의 불균형 하나가 시장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애커로프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증명해 보였다.
“품질에 대한 불확실성이 단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 조지 애커로프, 「레몬 시장」 (1970)
레몬 시장 논문의 파급력은 중고차를 훨씬 넘어섰다. 의료 시장을 보라. 환자는 의사만큼 자신의 병을 알지 못한다. 보험 시장을 보라. 가입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보험사보다 더 잘 안다. 금융 시장을 보라.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어떤 왜곡을 만드는지. 애커로프의 레몬 이론은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모든 시장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은 거의 없다.
애커로프는 이후에도 경제학의 변방을 탐구했다. ‘정체성 경제학’에서 그는 인간이 소득 극대화가 아니라 정체성 유지를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직업이 자신의 정체성과 충돌할 경우, 사람들은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해도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카스트 제도 하에서 특정 계층이 경제적으로 불리한 직업에 계속 머무는 현상도, 이민자들이 같은 민족끼리 모여 사는 현상도, 이 프레임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세 갈래의 도전, 하나의 결론
세 사람이 각각 무너뜨린 것은 미묘하게 다르다. 카너먼은 인간의 인지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보였다. 우리의 뇌는 체계적으로 틀린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세일러는 그 비합리성이 예측 가능하고 설계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다. 인간의 편향을 이용해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가 가능하다. 애커로프는 인간의 합리성 이전에 정보 자체가 균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였다. 완전 정보를 가정하는 시장 이론은 출발점부터 틀렸다.
카너먼
인지의 편향
인간의 뇌는 두 시스템으로 작동하며, 빠른 시스템 1이 체계적 오류를 만든다. 손실회피, 기준점 효과.
세일러
선택의 설계
예측 가능한 비합리성은 정책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본값을 바꾸는 넛지, 심적 회계의 발견.
애커로프
정보의 불균형
시장은 완전 정보를 전제하지만 실제 정보는 비대칭적이다. 레몬 시장, 역선택의 경제학.
세 사람이 합쳐지면 하나의 질문이 된다. 경제학의 주인공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혹은 — 그 신화를 걷어냈을 때,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세 사람이 공유한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태도였다. 세상에 나온 이론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 이론이 아닌 현실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저항한 것이다. 카너먼은 심리학 실험실에서 데이터를 쌓았다. 세일러는 학교 카페테리아의 음식 배열을 바꿨다. 애커로프는 중고차 딜러를 관찰했다. 경제학의 혁명은 칠판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행동경제학이 바꾼 세계
세 사람의 연구는 교과서 안에 머물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2010년 세계 최초의 ‘행동 인사이트 팀(Behavioural Insights Team)’, 일명 “넛지 유닛”을 출범시켰다. 세금 고지서에 “귀하의 이웃 대부분은 이미 납부했습니다”라는 문장 하나를 추가해 납부율을 높이는 실험이 성공을 거뒀다. 오바마 행정부는 같은 방식의 팀을 구성했고, 이후 수십 개국이 넛지 정책을 도입했다.
금융 시장에서 애커로프의 정보 비대칭 이론은 신용평가 시스템, 금융 공시 의무, 보험 가격 산정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데 기여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왜 시장은 스스로 신뢰를 파괴했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명확한 답을 제공한 것도 레몬 이론의 틀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을 판매한 투자은행들은 구매자보다 그 품질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카너먼의 유산은 경제학을 넘어 의학, 법학, 공학, AI 설계에까지 퍼졌다. 2024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의 행동과학자들은 그를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확신하는 전문가를 만나면 항상 걱정된다. 과신(Overconfidence)은 인지 편향 중 가장 파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무너뜨린 것은 결국 ‘평균적 인간’이라는 환상이다. 경제학은 오랫동안 가상의 합리적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이론을 쌓았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 있는 것은 손실 앞에서 겁먹고, 공짜 돈을 흥청망청 쓰며, 레몬을 피하려다 시장에서 발을 빼는 인간들이다. 그 인간들을 제대로 보는 것에서 더 나은 경제학이 시작된다.
핵심 개념과 저작
- 대니얼 카너먼: 전망이론(Prospect Theory, 1979 공저 트버스키), 시스템 1·2, 손실회피, 기준점 효과 ·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2011)』
- 리처드 세일러: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 보유효과(Endowment Effect), 넛지(Nudge) · 저서 『넛지(Nudge, 2008 공저 선스타인)』,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Misbehaving, 2015)』
- 조지 애커로프: 레몬 시장(Market for Lemons, 1970), 정보 비대칭, 역선택(Adverse Selection), 정체성 경제학 · 저서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 2009 공저 실러)』